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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9:1-12(가서 씻으라!)

by 미류맘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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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진흙으로 고치시고 '가서 씻으라!' 명령하십니다. 시키는 대로 순종한 그는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1. As he passed by, he saw a man blind from birth.
2. His disciples asked him,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다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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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 태어나면서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성경학자는 확실치는 않지만 8장과 9장 사건 사이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여섯 번째 '표적'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남자는 장님인데, 성경에서 장님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비유하여 진리를 볼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남자가 장님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말 그대로 '빛'을 주실 것입니다. 이 남자는 그리스도가 개입하기 전까지 결코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 사람이 장님으로 태어난 이유를 사람들은 두 가지로 이해했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죄를 지었거나 그의 부모가 한 일로 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고통은 죄의 결과, 즉 아담을 통해 인간이 타락한 후의 결과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인간의 죄의 결과로 보는 고통은 정치적 불안, 빈곤, 굶주림, 전쟁 등 어떻게 보면 대부분 사회.정치적인 이유로 비롯됩니다. 이 장님의 이야기는 예수 당시 어떤 사람이 받는 고통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예수님이 정면 대결하시는 일화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그들이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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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Jesus answered, “Neither did this man sin, n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revealed in him.
4.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who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is coming, when no one can work.
5. While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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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람이 죄로 인해 장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남자가 태어나기 전에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부모의 죄로 벌을 받는가?" 예수 당시 삶의 모든 고통은 이전의 잘못에 대한 대가, 즉 업보의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고통이 죄에 대한 처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4. “우리는 낮이 계속되는 동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는 지상의 사역과 관련된 은유를 사용하십니다. 전기가 없는 시대에 야간은 필연적으로 어둠 때문에 일을 하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낮이 일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시간이었지만 제한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듯, '낮'은 이 땅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섬기실 수 있는 남은 시간을 말합니다. 반면, '밤'은 예수가 죽어서 그의 지상의 일이 끝나게 되는 시간을 말합니다. 낮과 밤의 비유는 이 맹인이 볼 수 없는 '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가 아닌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십니다. 그의 지상의 사역에서 '일할'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독교 신자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날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나는 일해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일해야 한다'고 말씀함으로써 공동체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책임질 의무를 부여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맹인을 영적 은유로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눈이 먼 사람들은 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척하며, 말 그대로 하나님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십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기회가 있을 때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묘사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신중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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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When he had said this, he spat on the ground, made mud with the saliva, anointed the blind man’s eyes with the mud,
7. and said to him,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which means “Sent”). So he went away, washed, and came back seeing.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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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시고, 그 진흙으로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7.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실로암 샘에서 씻으라"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이다). 그 사람은 가서 씻었고, 앞을 보게 되어서 돌아왔다.

예수님이 진흙을 사용한 것은 몇 가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자의 설명을 정리합니다(아래):

첫째, 예수님은 몇몇 신약 구절에서 소경을 치유하신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상당히 다양하다. 여기서 예수님은 진흙을 사용하여 소경의 눈에 바르신다. 침만 사용하신다(마 8:22-26). 맹인들의 눈을 만지신다 (마 9:27-31).

둘째, 진흙의 사용은 인간의 궁극적인 기원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 2:7).

셋째, 이 이적은 안식일에 일어났다. 예수님은 이미 안식일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에 도전하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런 기적이 두 번 반복된다. 예수님은 그의 기적을 통해 '일'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흙을 섞어서' 일하셨다. 이 행위들은 안식일에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로 바리새인들의 전통을 어긴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이 사람의 눈에 흙을 사용하신 것에 실질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 구절에서 그가 지시하는 것은 이 사람에게 '가서 눈 위의 진흙을 씻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남자가 가만히 앉아서 기적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님은 그가 할 일을 주셨다.

이 기적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7가지 기정 중 6번째이다. 이 경우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고치는 기적이다. 이 경우는 몇 가지 이유로 독특하다. 첫째, 예수가 이 사람에게 본래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부여하려 한다는 의미이다(요 9:1-2). 둘째,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이 29:18) 셋째, 예수님은 이 기적을 계기로 제자들에게 모든 고난이 죄에 대한 벌이 아님을 가르치신다(요 9:3-4). 마지막으로 이 기적은 안식일(요 9:14)에 일어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바리새인들을 자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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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e neighbors therefore, and those who saw that he was blind before, said, “Isn’t this he who sat and begged?” 9. Others were saying, “It is he.” Still others were saying, “He looks like him.” He said, “I am he.”
10. They therefore were asking him, “How were your eyes opened?”
11. He answered, “A man called Jesus made mud, anointed my eyes, and said to me‘Go to the pool of Siloam, and wash.’ So I went away and washed, and I received sight.” 
12. Then they asked him, “Where is he?” He said, “I don’t know.”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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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래서 이웃들과 이전에 그가 맹인이었던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말했다.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9.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다"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사람이다"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이오."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자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이전에 앉아서 구걸하던 맹인으로 보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당사자가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하는데도 일부 사람들은 '매우 닮은 사람'으로, 즉 이 사건을 일종의 사기로 믿고 싶어합니다. 이런 사람의 심리를 학자가 설명합니다(아래): 

이것이 인간의 공통된 반응인데, 우리가 믿는 것은 먼저 우리가 원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고, 그 후에야 우리가 보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위의 설명은 우리가 무엇인가 믿을 것을 결정할 때, 올바른 것(진리)을 믿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결과를 눈으로 보아야 비로서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또는 내가 내 자신의 교훈을 말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요 7:17)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로 인해 눈이 보이게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적을 믿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기적을 보면서 말합니다: "아니야,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사기임에 틀림없어! 어떻게 맹인이 눈에 진흙을 바른다고 앞을 볼 수 있어?"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결론을 믿고자 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진리를 믿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믿지 않습니다. 

10.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11. 그가 대답했다. "예수란 사람이 진흙을 만들어 내 눈에 바르고,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실로암 샘에서 씻으라."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이 여섯 번째 표적을 위해 이 사람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5장에서 약 40년 동안 불구로 살아온 걷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신 것처럼 이 맹인으로 태어난 이 사람도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일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이 이전의 눈먼 거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 뜬 장님에게 계속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 계속 물어보고 그는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자신의 치료를 증언하는 그의 답변은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란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고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불려가서 심문을 받을 것이고 그는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 치유받은 맹인의 일화에서 우리는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장황하고 잘 다듬어진 유식한 말로 진술할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가 깊고 심오한 지식을 갖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때 폭넓은 경험이나 잘 다듬어진 이야기가 필요 없습니다. 이 경우, 가장 강력한 도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간단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학자는 이해를 위해 마가복음 5장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이 무덤 사이에서 지내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귀신 들린 사람의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감명받아) 예수를 따라가겠다고 부탁하였다는 설명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서 증언하라'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막 5:19)

맹인의 경우 예수님이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바르자(치료를 하자) 즉지 낫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빛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할 일을 주십니다: '가서 씻으라!' 그가 순종으로 행동할 때까지 그의 축복은 보류되었습니다. 그가 믿고 시키는 대로 실로암 샘에서 씻자 치유되었습니다. 증거는 분명합니다: '그는 한때 장님이었으나, 지금은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에 있소?" 그에게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나는 모릅니다."

사람들이 그의 눈을 뜨게 한 예수가 어디에 있냐 묻자 그는 그저 '모른다' 대답합니다. 이 간단한 대답에서 우리는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궁금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장님이었던 사람이 보게 되었나?' 그의 간단한 대답으로 인해 그들은 더 묻고 싶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경우에서 우리는 자신의 구원과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서 유식하고 거창한 말로 포장할 필요가 없음을 배웁니다. 이 사람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심문받을 때 자신의 구원을 고백합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 가지는 전에 제가 앞을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본다는 사실입니다."(요 9:25)  

물리적으로 눈 뜬 우리들은 영적으로 장님일 수 있습니다. 이 맹인인 이야기는 영적으로 '눈뜬 장님'인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눈 뜨고도 진리를 보지 못한다면, 너희는 영적 장님이다.  

이 눈뜬 장님처럼,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단순하고 강력한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요 9:11, 이미지 소스:https://revkevnye.com/)

다만 제가 아는 한 가지는 전에 제가 앞을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본다는 사실입니다.(요 9:25)  

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그 사람은 눈을 뜨고 이 세상의 빛으로 오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그 자신의 방식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합니다.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9/John-chapter-9.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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