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12:34-43(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미류맘 2022. 2. 8.
728x90

무리가 '인자가 들려져야 한다'는 말을 이해 못하자, 예수님은 잠시 빛이 있을 때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시고 자리를 떠나십니다. 요한은 이러한 불신은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 중 일부가 예수를 믿게 됩니다.  

 

34. The multitude answered him, “We have heard out of the law that the Christ remains forever. How do you say,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Who is this Son of Man?” 
35. Jesus therefore said to them“Yet a little while the light is with you. Walk while you have the light, that darkness doesn’t overtake you. He who walks in the darkness doesn’t know where he is going.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

34.  무리가 예수께 대답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려져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리고 인자는 누구입니까?"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빛이 너희와 잠시 있을 것이다. 빛이 있을 때 걸으면 어둠이 너희를 사로잡지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걷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인자가 들려져야 한다'는 말을 어떤 사람들은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의 암시로,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형에 대한 언급임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실 것이라고 들었는데, '들려진다'는 것이 천국이든 십자가형으든 예수가 이 땅에 영원히 계시지 않을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그들은 혼동스럽습니다. 또 '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인자'와 '들려진다'라는 의미가 연결되는지 묻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인자가 들려져야 한다'의 의미에 혼동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25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빛과 어둠'의 은유를 말씀하십니다. '빛과 어둠'은 '생명과 죽음'의 차이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며, 그 사실을 자신이 말씀하신 메시지와 행하신 기적들, 그리고 많은 증거들로 증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빛이 있을 때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지 않습니다. 잠시 있다가 어디론가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아니하다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

36. "빛이 너희에게 있는 동안 빛을 믿어라. 그러면 너희는 빛의 자녀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서 숨으셨다.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고린도전서 6장 2절에서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유명한 진술을 하는데, 야고보 4장 14절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 4:14) 지적한다. 잠언은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구제책이 없이 갑자기 망하고 만다"라고 경고한다(잠 29:1). 이 경고들은 모두 예수가 예루살렘의 백성(요 12:20-22)에게 설교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 "기다리지 마라."

무리에게 말씀하시듯 빛이신 그리스도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지상의 사역이 끝나가고 있고, 예수의 말씀을 듣는 백성도 그의 부름에 응답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남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 있을 때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래야 어둠에 휩싸이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이미 '너무 늦을 것'이고 그때까지 하나님을 무시했던 자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어디론가 숨으십니다.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요 12:35-36, 이미지 소스:https://anglicanprayer.files.wordpress.com/)

--------------

37. But though he had done so many signs before them, yet they didn’t believe in him,
38. that the word of Isaiah the prophet might be fulfilled, which he spoke, “Lord, who has believed our report?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39. For this cause they couldn’t believe, for Isaiah said again, 
40. “He has blinded their eyes and he hardened their heart, lest they should see with their eyes, and perceive with their heart, and would turn, and I would heal them.”
41. Isaiah said these things when he saw his glory, and spoke of him.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37.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예수는 많은 표적을 통한 많은 증거를 제시하셨으나 보는 눈이 있던 바리새인들도 보고 알기를 거부했습니다. 불신이란 한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바리새인들도 무지로 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명백한 결론을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서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도 그 기적을 행한 예수는 물론 증거를 없애기 위해 회복된 사람을 모두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예수님이 고뇌로 힘들어 하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에서 이적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에 따라 증언의 형태가 다릅니다. 그것을 천둥 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증거는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굳히셨기 때문에 그들의 불신이 '그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사야가 말했다. "주님, 우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으며, 주께서 보여주신 팔이 누가에게 나타났습니까?"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으로 불리고,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고난과 학대를 예언합니다. 여기에 인용된 부분은 그 글의 시작에 나옵니다. 이사야는 수사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우리의 메시지를 믿었느냐?" (사 53:1) 이 질문은 예수님과 군중과 나눈 최근의 대화와 맥락이 같다고 성경학자는 말합니다. "주께서 보여주신 팔이 누가에게 나타났습니까?"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평들을 읽어 보고 나름대로 정리해 봅니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드러낸 '주님의 팔'을 보려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63장은 여호와께서 홍해를 모세가 가를 때 비슷한 '주의 팔'의 의인화 표현을 합니다: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사 63:12). 성경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모세는 참된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한 권능에 의해 인도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팔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그의 얼굴의 천사(the angel of His Face)'와 '그의 이름이 있는 천사(the angel in whom is His Name)'의 말을 듣는 것과 같은 의인화입니다. 잠언에서도 우리는 '지혜의 의인화'를 읽습니다. '주님의 팔(힘과 능력)'도 이러한 표현과 같은 방향을 가르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팔'이라는 관념은 하나님의 신성한 힘과 능력이 인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신화 되었다는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의 신성함 힘과 능력이 그의 오른팔로 예수를 이끄셔서 메시아가 그 모든 힘과 능력을 온전히 인도받으셨습니다.

39. 그런 이유로 그들이 믿을 수 없었음을 이사야가 다시 말했다. 40. 주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여, 나에게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41. 이사야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가 예수의 영광을 보고 그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다.  

위의 이사야의 질문에 대한 예상된 대답은 성경에는 없지만, 현대인이 '누가 신경이나 쓰냐?'의 의미인 'Who cares?'입니다. 이 뜻은 메시아가 그 민족 뿐아니라 전세계에서 거부당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집트 민족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출 9:12). 이로서 바로가 하나님께 더 저항하도록 하였고 더 많은 점염병을 초래합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바로 자신이 잔인하고 자신의 마음을 먼저 굳게 했다는 것입니다(출  7:13, 7:22, 8:15, 8:19, 8:32). 결국 그 결과 바로는 요즘 말로 '폭망'합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잠 29:1)

38절과 39절은 '그런 이유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합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단 하나의 이유(명시적으로 언급된)는 불신에 대한 그들의 사전 약속입니다. 그들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믿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6장 10절에서 요한의 인용은 바로 그 맥락입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10)

위의 인용 구절은 현재형으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머리가 있어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장님과 귀머거리가 되어 예수께 돌아와도 '고침'을 받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눈을 가리고, 마음을 굳게'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불공평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러시는데, 어떻게 백성의 불신을 탓하실 수 있습니까?"

앞에서 명확한 증거인 하늘에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믿지 않았듯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적도 확신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기로 결정한 후에, 하나님은 그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굳게'하십니다.

더 이상 그들은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 자신의 반란의 결과입니다.

요한이 여기서 언급한 것은 이사야가 어떻게 '그의 영광을 보고 그에 대해 이야기했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의 그분은 예수님이고, 요한은 분명히 구약성경 예언자의 환영을 나사렛의 예수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

42. Nevertheless even of the rulers many believed in him, but because of the Pharisees they didn’t confess it, so that they wouldn’t be put out of the synagogue,
43. for they loved men’s praise more than God’s praise.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4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 중에서도 그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바리새인들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들은 회당에서 쫓겨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41절과 42절은 요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로 연결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성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나사렛 예수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으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요한은 기록합니다.  그들 중 예수의 추종자(종교적 엘리트)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 좋게 말하거나 적어도 공평하게 말하려고 했으나,자신의 지위와 동료의 존중을 잃을까 두려워 더 대담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신앙에 대해 말하지 못했습니다(요 9:22).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이 죽으심을 당한 후에야 자신의 믿음을 주장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요셉도 동료들 앞에서 예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지위와 '인간에게서 오는 영광'을 유지하는 쪽을 택합니다(눅 9:23).

우리에게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영광을 사랑할 것인가?


오늘 QT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아사야서 53장 1절에서 선지자가 말한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코멘트들을 읽고 나름대로 정리해서 올립니다. 구약시대에 어떻게 신약의 이야기처럼 이사야는 예언할 수 있었을까요?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12/John-chapter-12.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