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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13:1-17(사랑의 종 예수)

by 미류맘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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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전에 예수님은 죽음이 임박함을 아시고, 종의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가 반대를 하자, 예수님은 자신의 본보기를 보고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1. Now before the feast of the Passover, Jesus, knowing that his time had come that he would depart from this world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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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아셨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가 교회 안에 자리를 잡고 알려진 후 잘 쓰여졌기 때문에 이 복음서에서는 세부 사항들이 생락되고 요한은 자신의 목격 경험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것에 집중한다고 학자는 말합니다.

여기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지상의 삶은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의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었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었다고 결론부터 말합니다. 하나님께도 돌아갈 시간이 다가옴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그의 마지막 가르침을 사랑과 겸손을 몸소 행하십니다.

2. During supper, the devil having already put into the heart of Judas Iscariot, Simon’s son, to betray him,
3. Jesus, knowing that the Father had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s, and that he came from God, and was going to God,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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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녁 식사 중에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배반할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을 아셨다. 그는 또한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 돌아가실 것을 아셨다. 

여기에서 저녁 식사는 예수님과 가까운 추종자들 사이의 사적인 모임이고 누가 출석했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가룟 유다가 언급되는데 그는 이미 지역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돈을 받고 예수를 넘기기로 주선한 이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정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결정을 순종으로 따르면서 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앞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의 끝없는 은혜를 언급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은혜를 받는 대상 중에 배반자인 유다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요한은 앞에서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 13:1)

 

4. arose from supper, and laid aside his outer garments. He took a towel, and wrapped a towel around his waist.
5. Then he poured water into the basin, and began to wash the disciples’ feet, and to wipe them with the towel that was wrapped around him.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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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식탁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발을 닦아 주기 시작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은 '주님'과 '선생님'으로 바라봅니다(13절). 예수님도 그들의 관계를 '그렇게 보는 것이 맞다'(13절) 말씀하십니다. 고대의 길은 쓰레기, 배설물 등 온갖 더러운 것으로 덮여 있었고 사람들은 샌들을 신거나 맨발로 다녔습니다. 발 씻기는 필요했지만 자신의 발을 스스로 씻었고, 그것은 더럽고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남의 발을 씻겨 주는 경우는 항상 낮은 지위의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행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는 행위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주인임을 부인하지 않으시면서(13절), 예수님은 끝없는 사랑과 겸손의 행동을 실천함으로 몸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험하고 겸손한 일을 하기 위해 겉옷을 벗으십니다. 제자들은 '누가 가장 높은가?'를 두고 다투는데(막 9:34), 예수의 행동은 세상의 권력과 리더십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겸손의 화신이 아닐까요? 중요한 의미의 차이에 대한 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영어 번역에서 놓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구절들은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는 일을 영어 'wash'에 해당하는 어근 단어 niptō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10절에서는 몸 전체를 씻는(목욕하는) 일과의 차이를 영어로 'bathe'에 해당하는 어근 단어 louō를 사용하여 묘사한다. 예수님은 유다를 예로 들어 10절과 11절에 언급할 것인데, 이는 사람이 '한 번에 모든 구원을 받는 것'과 이후의 죄의 고백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유추해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해 봅니다. "이미 목욕을 한 사람은 발이 더러워지면 발만 깨끗하게 씻으면 몸 전체가 깨끗하다. 그러나 목욕을 하지 않고 상태에서 발이 더럽다고 발만 씻는다고 해서 몸 전체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제가 정리하고도 말장난도 아니고 엄청 복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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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en he came to Simon Peter. He said to him, “Lord, do you wash my feet?” 
7. Jesus answered him, “You don’t know what I am doing now, but you will understand later.”
8. Peter said to him, “You will never wash my feet!” Jesus answered him, “If I don’t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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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예수께 말했다. "주님, 제 발을 씻으십니까?" 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지금 내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베드로는 묻습니다: "왜 다른 사람 대신이 이런 (종이나 할 수 있는 험한) 일을 자처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겸손한 종됨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해야 하는 의무임을 행동으로 보이십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주인이신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면 그의 추종자들도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많은 교훈들은 현장에서는 제자들이 이해를 못하고, 한참 뒤에서야 이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 경우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실히 믿는 베드로는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답변하십니다: “너는 지금 내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날 밤 베드로는 예수님이 '네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36절) 말씀하실 때, 그는 "왜 따라갈 수 없느냐? 목숨을 내놓고 가겠다"(37절) 교만에 찬 말을 합니다. 

8. 베드로가 말했다. "제 발을 씻기시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다."

(눈치를 채지 못하는) 베드로는 예수가 하인의 순종적인 일을 하는 것을 결사 반대합니다. 그는 예수를 주인으로 진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라고 고집합니다. 뒤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의도를 오해하고, 온전히 깨끗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한번에 (전체 몸을) '목욕을 받는 것'과 정기적으로(더러운 부분만) 씻김을 받는 것' 사이의 차이입니다(요 13:9-10).

그는 늘 머리가 굳어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에 경청을 해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예수가 하려고 하시는 일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위의 8절에서 자신의 발을 씻기지 못하게 거절하듯). 그리고는 완전히 방향을 바꾼 뒤에 다시 한번 이해 부족에 빠지게 됩니다(위의 9절에서 처럼,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는). 베드로와 같은 유형을 大器晩成(대기만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베드로와 같은 사람는 흥미있는 캐릭터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예수님의 응답은 똑같이 흑백이다. 그의 말은 최후통첩이다: "내가 이것을 하든가, 아니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관계가 된다!". 이것은 베드로의 고집에 대한 질책이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선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발을 씻는 일은 협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야, 나는 너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구절이 계속되면서 예수님은 '씻음(washing)'과 '목욕(bathing)'을 구분할 것이다. 이것은 유다의 배신에 대한 암시를 포함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현대 신앙인에게 적용하는 것을 더욱 구체화시킨다. 즉, 이것은 영원한 구원이 아닌 동료애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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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Simon Peter said to him, “Lord, not my feet only, but also my hands and my head!”
10. Jesus said to him, “Someone who has bathed only needs to have his feet washed, but is completely clean. You are clean, but not all of you.”
11. For he knew him who would betray him, therefore he said“You are not all clean.”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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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러면, "자신의 발만 씻지 말고, 머리와 손도 씻겨달라" 간청합니다. 성경인데 이 대목은 겉으로 보아 웃기기까지 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씻기'는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을 눈치 챈 모양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씻겨주실 수 있는 모든 신체 부위를 다 씻겨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이 이해한 것 같습니다. 학자는 설명합니다(아래):

'손'은 일 또는 노력의 상징이고, '머리'는 한 사람의 생각의 중심이다. 예수님이 신성한 '씻김'을 제공하신다면 그는 그의 행위와 생각이 씻기기를 원한다.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이 지적하시겠지만 전체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 예수님은 '(전체적으로) 목욕을 할 필요가 있는' 사람과 '(부분적으로) 씻기만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별하실 것이다. 베드로와의 이런 교류, 그리고 유다의 배신에 대한 언급에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큰 의미를 지닌다.

10.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을 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 이미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깨끗하지만 너희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어와 영어 표현과 과거와 현재진행 중인 시제를 사용하여 10절에 대한 학자의 의미 설명입니다. 번역하면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편집했습니다. 복잡하지만 중요한 개념입니다(아래): 

예수님과 베드로가 발을 씻는 것에 대해 토론할 때, 그들은 그리스 어근인 niptō를 사용했다. 여기서 예수는 '목욕(bathing)'을 언급할 때 louō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두 용어 사이의 차이는 영어 단어 'wash(씻다)'와 'bathe(목욕하다)' 사이의 차이와 거의 똑같다. '씻다'는 얼룩을 깨끗이 하는 행동을 의미하고, '목욕하다'는 전체적으로 완전히 깨끗이 하는 것이다.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은 예수가 과거 시제인 louō (목욕하다)형식을 사용하는 반면, niptō(씻다)는 현재 진행 중인 행동이다. 정기적으로 발을 씻겨야 하지만, (이미) 목욕한 사람은 '완전히 깨끗하다'. 따라서 다시 목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 말씀의 상징성은 예수님이 다음의 진술을 완성하실 때 밝혀진다: "너[베드로]는 이미 [목욕해서] 깨끗하지만, 여기에 있는 너희 모두가 [깨끗하게 목욕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유다가 예수를 배반할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11절은 씻는 형태에 따른 구원에 대한 강력한 설명을 제공한다. 한 번 완전히 목욕을 한 사람들은 다시 목욕을 할
필요가 없다. 즉, 다시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매일 걸으면서 사소하게 발에 묻는 '흙'만 제거하면 된다. '깨끗한' 사람들은 영적인 씻김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간단히 발만 씻으면 된다. 하지만 한 번도 전신 '목욕'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깨끗하지 않은' 유다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발만 씻는다고 목욕한 것처럼 전신이 깨끗해
지지 않습니다.)

11. 예수께서는 누가 자신을 배반할 것인지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방금 자신이 주는 영적 '씻김'의 본질을 설명하셨다. 구원을 의미하는 '목욕'을 받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시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발만 '씻기면' 된다. 그리스도와 좋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지만 이미 (과거에)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미 '깨끗하다'(요 13:7-10)는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은 그런 영적인 의미에서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신다. 그 자리에서 유다가 예수를 배반할 것을 예수님과 유다만이 알고 있다. 다른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이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베드로처럼 자제력이 부족하더라도(요 13:8-9) 그 믿음으로 인해 그들은 깨끗하다. 그러나 유다는 진실하지도 않고 순종적이지도 않다. 그는 지금까지 연기를 했고 곧 그의 적들에게 예수를 팔 것이다 (요 13:21–26).

이 구절을 논할 때, 유다의 존재는 종종 잊게되는 두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첫째, 유다는 예수님이 발을 씻겨서 섬기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유다가 길을 잃고, 배반하고, 살인을 모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겸손과 친절을 베풀어 주신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계속된다: 이것은 그의 적들에게 그리스도가 베푸신 마지막 사랑과 친절이 될 것이다.

둘째, 이것은 영적인 "씻김"이 고백과 같은 의식에 의해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유다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발 씻기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깨끗하지만, 유다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믿음이 없다면 표면적인 종교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목욕하기'와 '발 씻기'의 차이가 구원과 일상적인 죄 고백(요 13:1–11)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한 번에 구원을 받은 사람은 다시 구원받을 필요가 없고, 매일 매일 짓는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다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한(고집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거부한) 사람들은 일상적인 죄의 고백을 하더라도 한 번에 구원을 받지 못했었기 때문에 온전한 깨끗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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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So when he had washed their feet, put his outer garment back on, and sat down again, he said to them, “Do you know what I have done to you?
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You say so correctly, for so I am.
14. If I then, the Lord and the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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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수께서 그들의 발을 씻으신 뒤에 겉옷을 입고 다시 자리에 앉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이 무엇인지 너희는 알겠느냐?" 13. 너희는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나는 그렇기 때문이다. 14. 내가 주님과 선생님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발을 씻겨주시는 것이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인지 설명을 시작하십니다. 그 교훈은 세상의 리더십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편견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종이 주인 위에 있지 않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보다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된 사람에게는 종을 포함한 모두를 섬길 겸손과 자기희생이 필수적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주인과 하인은 개념은 분명했고 작은 일은 지위가 더 작은 사람에게 위임했습니다. "그건 하인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은 그 당시 상식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가 종 노릇을 자처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었을 때 놀라고 분노한 이유였습니다.

13절 예수님은 다시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 즉, '주님'과 '제자'의 관계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리고 14절  같은 주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 동료들 사이에서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리더십'과 '파트너쉽' 은 분명이 그 서열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을 할 때에는 같은 봉사, 겸손, 희생정신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리더십과 파트너쉽 모두 지위의 서열은 있지만
일의 종류에는 서열이 없습니다. 

 

15. For I have given you an example, that you also should do as I have done to you.
16. Most certainly I tell you, a servant is not greater than his lord, neither one who is sent greater than he who sent him.
17. If you know these things, blessed are you if you do them.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여 주었다. 13.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 17. 너희는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일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주인됨을 부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하십니다. 종이 주인보다 위에 있지 않듯이,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위에 있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특정 종류의 일을 바라볼 때, 그 일에 위 아래를 매기곤 합니다: "이런 일은 내가 할 가치가 없어." 예수님은 일이던 사랑이던 더 가치가 높은 것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종이 되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몸을 굽혀 겸손으로 사랑, 희생, 봉사를 함으로 스스로 본보기를 보이십니다. '나보다 아래인' 선(line)을 최대한 바닥까지 내리고 종의 자세로 몸소 실천함으로 가장 큰 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말씀과 행하심으로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나 위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 너희도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도 지위에 상관없이 그것이 리더십이던 파트너쉽이던지 서로 복종하고, 희생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세상의 상식은 더 작은 일은 더 작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겸손과 섬김은 모든 기독교인들의 의무임을 예수님은 본보기를 보이심으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말을 알고(이해하고) 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이미지 소스:https://www.lightpoint.church/)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봅니다. 예수를 팔게 될 유다도 그 대상에 있음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랑의 끝이 어디일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13/John-chapter-1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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