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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13:18-30(유다의 배반)

by 미류맘 202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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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예언하시나, 누가 어떤 일로 배신할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유다를 배신자도 지목하시고 그에게 '할 일을 서두르라!' 말씀하시자 유다는 밖으로 나갑니다. 

 

18. I don’t speak concerning all of you. I know whom I have chosen. But that the Scripture may be fulfilled, ‘He who eats bread with me has lifted up his heel against me.’
19. From now on, I tell you before it happens, that when it happens, you may believe that I am he.
20. Most certainly I tell you, he who receives whomever I send, receives me; and he who receives me, receives him who sent me.”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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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내가 너희 모두에 대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와 함께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대적하려고 자기 발꿈치를 들었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19. 지금부터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너희는 내가 바로 그인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유월절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깨끗하지만 너희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요 13:11). 이는 예수를 이미 배반하고 있는 유다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시는 과정에서 유다를 추가하실 때 실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누구를 택하시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18절 예수님은 시편 41절에서 이 한 구절을 택하셔서 이는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함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시 41:9) 

위의 구절에서, 다윗은 건강이 좋지 않아 쓰러져 있을 때 "그의 친구였던 사람(자신이 믿고 밥그릇을 같이하던 친구)이 그를 대적해서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고 호소합니다. 그는 배신당했습니다. 그의 친구였던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합니다. 그는 결국 자기 고향으로 가서 자살하는데, 이는 가룟 유다의 최후와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유다의 배반을 여러번 언급하십니다. 우리가 모르는 불안(공포)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오늘'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를 때, 우리는 '내일'에 대해 우리가 희망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잃습니다. 그 공포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죽음을 바로 앞두고 제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고난이나 좌절은 공포스러우나,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공포감이 훨씬 덜어질 수 있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실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마음이 괴로워 증언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20절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이 구절을 읽으면 이것이 부적절하지 않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올바른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은 두 부분을 잇는 다리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겸손한 종으로의 역할(요 13:12–16)에 대한 말씀한 후, 그의 제자들 중 누군가가 예수를 배반 할 것을 암시했다.

이것은 이 구절, 이전 구절,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 사이의 연관성을 확립한다. 유다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추종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에 의해 자신의 역할로 선택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을 선택하고, 보내고,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다가 배신했다고 해서 베드로나 안드류, 도마의 증언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문제있는 신자의 죄로 인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선언한 진리를 되돌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유다의 배반을 훨씬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그가 목격한 모든 기적과 설교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이미 저주를 선택했다(마 14:18-21).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은 배신당하면서 오는 강력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실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이 겪을 슬픔은 유다의 배반이 나머지 제자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내가 보낸 자'에는 예수님의 옳든 그르든 예수의 추종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택하고, 보내고, 능력을 주신 사람들입니다. 불행이도 그들 중에는 (예수의 진정한 추종자가 아닌) 유다가 포함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유다도 자신의 역할(예수를 배반하는)을 하기 위해 예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 중에 한 명이 배신해도, 다른 진정한 추종자들의 믿음과 증언은 계속 유효합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바로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았고, 내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을 진정으로 알았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요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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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When Jesus had said this, he was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Most certainly I tell you that one of you will betray me.”
22. The disciples looked at one another, perplexed about whom he spoke.
23. One of his disciples, whom Jesus loved, was at the table, leaning against Jesus’ breast.
24. Simon Peter therefore beckoned to him, and said to him, “Tell us who it is of whom he speaks.”
25. He, leaning back, as he was, on Jesus’ breast, asked him, “Lord, who is it?”
26. Jesus therefore answered, “It is he to whom I will give this piece of bread when I have dipped it.” So when he had dipped the piece of bread, he gave it to Judas, the son of Simon Iscariot.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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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다하면 '배신자'를 떠올립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유다가 곧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암시하셨으나, 아직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예수께 "저입니까?"(마 26:22)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요한은 그것을 건너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배반'이 예수를 떠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닌, 예수의 죽음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넘긴다는 것임을 제자들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23. 제자 중 하나가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이 사랑하신 제자였다. 

흥미로운 성경학자의 해설을 인용합니다(아래): 

고대 문학은 종종 3인칭으로 썼는데, 이는 참가자들이 1인칭이나 2인칭인 '나' 또는 '너'가 아닌 3인칭인 '그, 그녀, 그리고 그들'로 묘사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직접 경험담을 쓸 때도 그랬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가 저자인 바로 요한 자신이다. 요한의 이 용어의 사용은 부분적으로 예수와의 친밀한 우정을 암시하는 의미도 있다. 문학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그건 나야. 내가 그랬어!"라고 말하기보다는 겸손의 표시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한 제자가 예수께 뒤로 기대서 질문을 할 것인데, 그가 예수님의 오른쪽에 있음을 암시한다(요 13:25). 그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반역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를 할 것이지만, 그 제자(요한)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수님을 등지고 누운다고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예수님이 가운데에 계시고, 그림에는 왼쪽에 마리아가 있는데 마리아가 아니고 요한입니다. 유다는 돈봉투를 잡고 있고, 그의 뒤에서 상당히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이미지 소스: https://subratachak.wordpress.com/)

 

'최후의 만찬', Leonardo Da Vinci

 

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머리짓을 하여 말했다. "누구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25. 그가 그대로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이 빵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다." 빵 한 조각을 젹셔서 그것을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에게 주셨다. 

위의 설명을 보면, 베드로가 말하는 대상은 바로 예수님 오른쪽에 있는 요한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이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사람 중 한 명이 배신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21절). 베드로는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요한에게 손짓하여 묻습니다(24절). 이 시대의 일반적인 관습은 왼쪽으로 몸을 기대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더 조용히 묻기 위해 뒤로 기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문맥은 요한이 조용히 속삭이는 어조로 묻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이었을까요? 유다가 배신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만 들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나 질문을 하려면 그는 뒤로 기대야 하기 때문에 예수를 보기가 불편한 위치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요한도 유다를 배신자로 생각할 수 없었다는 추론입니다. 복음서에 따라 기록이 다른데 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마태복음에는 요한이 반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마 26:22-23). 요한은 유다가 이 빵 조각을 받고 곧 나가는 것을 언급하지만(요 13:27-30), 마태는 유다가 예수에게 직접 묻는다(마 26:25). 마태는 예수가 유다에게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만("네가 말하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마태의 빈 공간을 채운다. 순간의 감정과 소란 속에서 예수님과 유다의 교류는 부분적으로 상실된다. 제자마다 다른 소리를 듣지만, 그 누구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고대 세계의 우정과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시지만, 유다의 발을 씻겨주셨다(요 13:2-5).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우정 표현을 보여주신다(마 2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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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After the piece of bread, then Satan entered into him. Then Jesus said to him, “What you do, do quickly.”
28. Now no man at the table knew why he said this to him.
29. For some thought, because Judas had the money box, that Jesus said to him, “Buy what things we need for the feast,” or that he should give something to the poor.
30. Therefore having received that morsel, he went out immediately. It was night.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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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빵 조각을 받자마자, 사탄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빨리 하여라." 28.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는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그에게 하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사라" 말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누가 배신자인가?"하는 제자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예수님은 유다를 가리키시고 그에게 빵 조각을 떼어 주십니다. 그리고 사탄에 사로잡힌 유다에게 "네가 할 일(그의 배반을 이루기 위해)을 서두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을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유다가 돈을 관리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짐작합니다.

따라서 유다는 예수의 요청으로 나갔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 일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럴만한 (합법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핼을 것입니다. 오히려 뒤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정을 예언하실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유다가 아닌 베드로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최후의 만찬'에 대해 복음서마다 다른 기록을 마치 퍼즐조각처럼 맞추어 해석과 추측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13/John-chapter-1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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