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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사무엘상(1 Samuel)4:1-11(빼앗긴 언약궤, 빼앗긴 승리)

by 미류맘 202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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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장로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이동하고 궤를 우상처럼 믿고 받들입니다.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오자 두려움에 떤 블레셋이 용기를 다해 싸웠고, 궤는 빼앗기고 이스라엘은 대패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엘리의 두 아들은 한 날에 죽습니다.

 

1. The word of Samuel came to all Israel. Now Israel went out against the Philistines to battle, and encamped beside Ebenezer; and the Philistines encamped in Aphek.
2. The Philistines put themselves in array against Israel. When they joined battle, Israel was defeated by the Philistines, who killed about four thousand men of the army in the field.

언약궤를 빼앗기다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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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퍼졌다. 그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나갔고, 이벤에셀 옆에 진을 쳤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쳤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대 대하여 전열을 갖추었다. 그들이 전쟁에 합류하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하여, 전쟁에서 사천 명 가량의 군사가 죽임을 당했다.

사무엘상 4:1-2.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나갔고" (1절). 이 시기에는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같은 세계 강대국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압 사람, 암몬 사람, 블레셋 사람들과 같은 가까운 이웃을 상대로 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기서는 블레셋이 대상이었다.

이스라엘은 모압, 암몬과 동등한 조건에서 싸웠지만, 블레셋인들은 그리스 군 장비(헬멧, 방패, 쇠사슬 갑옷, 칼, 창 등)를 가지고 있어서 블레셋인들이 더 강력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철을 가공했고 전쟁에서 철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다.

블레셋인은 그레데(갑돌) 섬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이민족이었다(암 9:7). 아브라함 때에 블레셋 사람의 수가 적었으나,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블레셋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 그들은 5개의 성읍으로 구성되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퍼졌다. 그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나갔고" (1a절). 전쟁이 사무엘에 의해 시작됐다는 뜻은 아니다. 문헌에는 블레셋이 이 분쟁을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재앙으로 끝났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하여, 전쟁에서 사천 명 가량의 군사가 죽임을 당했다" (2b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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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hen the people had come into the camp, the elders of Israel said, “Why has Yahweh defeated us today before the Philistines? Let us get the ark of Yahweh’s covenant out of Shiloh and bring it to us, that it may come among us, and save us out of the hand of our enemies.”
4. So the people sent to Shiloh; and they brought from there the ark of the covenant of Yahweh of Armies, who sits above the cherubim: and the two sons of Eli, Hophni and Phinehas, were there with the ark of the covenant of God.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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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성이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말했다.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게 하셨을까?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 가져와서, 언약궤를 우리 가운데 있게 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4. 그래서 백성은 실로에 사람을 보내서, 그룹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곳에서 가지고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사무엘상 4:3-4. 이스라엘의 언약궤에 대한 미신적인 신뢰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와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3b절). 이스라엘 장로들은 블레셋 사람과 싸운 후, 그들의 병사들과 함께 언약궤를 가져오면 다음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나타낸다. 성막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에 보관되어 일반인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가서 궤를 보았는데, 일년에 한 번뿐이었다. 장로들은 이 언약궤를 지성소에서 꺼내서 (그것은 성막을 옮길 때 옮길 수 있었다), 덮고 전투에 그들과 함께 가지고 가려고 했다. 

언약궤는 전에 전투에 나간 기록이 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나팔을 든 제사장들이 궤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 뒤를 언약궤가 따랐도록 하였다(여 6:6-8). 그 외에 광야 여행(민 10:33) 때, 요단 강을 건널 때(수 3:1-17), 그리고 여리고 전쟁 때(수 6:4, 8)에 앞세워져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냈다 (자료: 라이프성경사전 중). 모세는 제사장들에게 성소의 기구와 나팔을 들려서 미디안 전쟁으로 보냈다(민 31:6). 나중에 사울이 궤를 가지고 전투에 나갔고(삼상14:18), 다윗도 그랬다(삼하 11:11).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4:3b). 장로들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약궤가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확신을 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틀렸습니다. 그들은 행운의 부적처럼 언약궤를 전투에서 흔들면 전쟁의 승리의 여신이 자신들에게 미소를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듯, 언약궤를 믿은 것이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게 다가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임을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증명장이라도 되듯이 전쟁에서 칼과 방패 대신에 언약궤를 앞세웠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오만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였으며, 죄악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삼상 4:3, 이미지 소스: https://agreatuntethering.com/)

그들은 언약궤의 존재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일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생각은 (언약궤의 임재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도록 하실 것이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의 명예를 위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엘리슨)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은 놀라운 제안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그렇게 훌륭한 해결책에 도달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이 부른 오해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구원을 구하지도 바라보지도 않고, (언약궤가 무엇인가를 할 것을 기대하며) 우상처럼 오직 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4절) 그들은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지고 왔고 엘리의 두 아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제사장들을 통해 옮겨온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들 옆에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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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hen the ark of Yahweh’s covenant came into the camp, all Israel shouted with a great shout, so that the earth rang again.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사무엘상 4:5. 땅이 진동하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으로 들어오자, 온 이스라엘 군이 큰 소리로 외쳐서 땅이 진동할 정도였다" (5a절). 이스라엘 진영을 지나는 사람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대단한 교회 예배로 생각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겉모습에 불구하고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모든 소란과 흥분은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마도 블레셋 사람들이 거짓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였기 때문에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보다 낫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교도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들이 하나님을 조종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보다 낫지아니 훨씬 더 형편없이 타락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처럼 우상을 숭배하지는 않았으나, 참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조정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한 죄악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하고, 성공을 위해 경건하고 열렬히 기도했다면, 그들은 (기도의 응답을) 듣고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의 외침은 그들의 허영심과 반종교를 모두 증명했다." (클라크) 학자는 또 말합니다(아래):

"땅이 진동했다" (5b절).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 거룩한 기쁨으로 가득 차거든 외치십시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이라면 자제할 것을 부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예배도 심판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나 큰 소리가 있기 때문에 믿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으면 안됩니다. 믿음은 고요한 물이고, 깊은 곳으로 흐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뛰고 외침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 앞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Spurgeon)

 

그들의 외침은 믿음을 가득차서 그들 내면에서 올라오는 기쁨과 환희의 외침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내세워서 적이 두려워하도록 광적으로 외친 격정의 외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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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e noise of the shout, they said, “What does the noise of this great shout in the camp of the Hebrews mean?” They understood that Yahweh’s ark had come into the camp.
7. The Philistines were afraid, for they said, “God has come into the camp.” They said, “Woe to us! For there has not been such a thing before.
8. Woe to us! Who shall deliver us out of the hand of these mighty gods? These are the gods that struck the Egyptians with all kinds of plagues in the wilderness.
9. Be strong, and behave like men, O you Philistines, that you not be servants to the Hebrews, as they have been to you. Strengthen yourselves like men, and fight!”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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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블레셋 사람들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히브리 진영에서 이 큰 외치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 그들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것을 알았다. 7.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서 말했다. "하나님이 진영에 들어왔다!" 또 말했다. "큰일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8. 큰 일이다! 이 강한 신들의 손에서 누가 우리를 구할 것인가? 그들은 광야에게 온갖 재앙으로 이집트를 친 신들이다. 9. 블레셋 사람들아, 용기를 내어라. 사내답게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전에 히브리 사람들이 너희의 노예였던 것처럼, 너희들도 히브리 사람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 자, 사나이 답게 강해져서 싸우자!"

사무엘상 4:6-9. 하나님이 진영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진영에 들어왔다!" (7절).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의 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는 것을 이해한 것과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칭찬해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궤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 것이 드문 일—들어도 보지 못한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집트 사람들을 무찔렀다는 것을 알았다 (온갖 종류의 질병으로 이집트를 치신 사건).

"이 강한 신들" (8a절).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이스라엘 하나님의 우월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우상들과 같이 신들그러나 강한 신들(mighty gods)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에 대항하여 더욱 열심히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만약 그들의 신이 정말로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믿었다면, 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의 신보다 위대하다고 믿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아, 용기를 내어라. 사내답게 싸워라!" (9절). 언약궤의 문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었으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은 역으로 그들이 용기를 내어 싸우도록 고무합니다.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일어설 때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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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e Philistines fought, and Israel was defeated, and each man fled to his tent. There was a very great slaughter; for thirty thousand footmen of Israel fell.
11. God’s ark was taken; and the two sons of Eli, Hophni and Phinehas, were slain.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상 4:10-11. 궤가 진영에 들어오고, 이스라엘이 크게 패한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싸웠고 이스라엘은 패하여, 제각기 자신의 장막으로 도망갔다" (10a절). 이 대패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블레셋 사람들은 절망적인 사람들의 용기를 가지고 싸웠다. 둘째,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궤가 그곳에 있으면 전쟁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 대신 언약궤의 힘을 믿는 이스라엘의 미신적인 믿음을 축복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방관은 실수를 낳고, 실수는 좌절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 전투의 실패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전합니다. 믿음은 행동을 요구합니다. 주의 뜻을 알고 행동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언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잘못 해석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언약궤의 힘을 믿었습니다. 그 안에 진실에 기반한 의지가 없는 언약궤는우상숭배의 말 못하는 우상과 다를 바 없는 빈 껍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지 사람의 뜻에 따라 소환될 수 있는 요정은 아닙니다.

"큰 살륙이 있어서 삼만 명의 이스라엘 보병이 쓰러졌다" (10b절). 이스라엘이 패했을 뿐만 아니라, 궤를 전쟁에 가지고 오전 전보다 더 심하게 패하였다. 그들이 궤를 가지고 오기 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약 사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4.2). 그러나 언약궤를 가지고 온 후에 일곱 배 이상의 죽임을 당했다 (4:10).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서 말했다. "하나님이 진영에 들어왔다!" 또 말했다. "큰일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삼상 4:10, 이미지 소스: https://aclayjar.net/)

1970년대 말, 이즈베트 사르테의 폐허에 있는 실로 곡물 저장고에서 5줄짜리 비문이 발견되었다. 해독할 때, 이 전투에 대한 블레셋 사람의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홉니 사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사건에 대한 최초의 성경 외 언급이다.

이미지 소스: https://onthehousetops.files.wordpress.com/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11a절). 그들은 전쟁에서 대패했을 뿐아니라 (언약궤를 가지고 오지 전보다 일곱 배 이상의 사상자),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았깁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우상으로 만든 궤를 빼앗으셨고 그들은 적에게 참패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만들라고 지시하셨고, 그 안에는 율법판과 마나 한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넣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언약을 기억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세우신 궤를 인간들이 우상으로 사용하는 매우 위험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종류의 우상도 (그 우상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우상으로 만들 수 있다. 궤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만들라고 명령하셨고,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율법판과 맛나 한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궤에 넣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지만, 그 궤의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 보좌에 계시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특정한 상황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방주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궤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언약궤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다" (11b절). 하나님은 엘리의 두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증표로 한 날에 죽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너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일어날 너에 대한 증표가 될 것이다. 한 날에 그들 모두 죽을 것이다" (삼상 2:34).

다음 절들에서는 구체적인 심판의 결과를 설명합니다. 이 비극의 시발점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이것이 끝입니다. 그리고 그들 후세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samuel-4/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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