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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사무엘상(1 Samuel)6:1-7:2(돌아온 언약궤)

by 미류맘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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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는 이제 블레셋 사람들에게 승리의 상징이 아닌 짐이 되었습니다. 방백들을 모아 의논하고 그들은 궤를 속건제물과 함께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돌려줍니다. 백성은 영광과 기쁨으로 궤를 맞이하고 궤는 그곳에서 이십 년을 머무릅니다. 

 

1. Yahweh’s ark was in the country of the Philistines seven months.
2. The Philistines called for the priests and the diviners, saying, “What shall we do with Yahweh’s ark? Show us how we should send it to its place.”
3. They said, “If you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don’t send it empty; but by all means return a trespass offering to him. Then you will be healed, and it will be known to you why his hand is not removed from you.”
4. Then they said, “What should the trespass offering be which we shall return to him?”
They said, “Five golden tumors, and five golden mice, for the number of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for one plague was on you all, and on your lords.
5. Therefore you shall make images of your tumors, and images of your mice that mar the land; and you shall give glory to the God of Israel. Perhaps he will release his hand from you, from your gods, and from your land.
6. Why then do you harden your hearts, as the Egyptians and Pharaoh hardened their hearts? When he had worked wonderfully among them, didn’t they let the people go, and they departed?

언약궤가 돌아오다

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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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역에 머무른 지 일곱 달이 되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서 물었다.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해야 하겠소? 그것을 제 자리로 보낼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오." 3. 그들이 대답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낸다면 빈손으로 보내지 마십시오. 반드시 속건제물과 함께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병이 날 것이고, 왜 그의 손이 여러분께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4.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에게 어떤 속건제물을 우리가 바쳐야 하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했다.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다섯 개의 금종기와 다섯 마리의 금쥐를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재앙이 여러분 모두와 통치자들에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종기의 이미지와 나라를 해치는 쥐의 이미지를 만들어서, 이스라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오. 그러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신들과 여러분의 땅에서 그의 손을 거두실 것이오. 6. 이집트 백성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굳힌 것처럼 당신의 마음을 굳게 하실 셈이오? 여호와가 그들 사이에게 심하게 벌을 내리신 후에게 이집트가 이스라엘 백성을 나가게 하였고 그들이 떠난 것이 아니오?

사무엘상 6:1-6. 언약궤 승리의 트로피에서 짐으로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역에 머무른 지 일곱 달이 되었다...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해야 하겠소?" (1-2절). 블레셋 사람들이 처음 언약궤를 빼았았을 때, 그들은 그것이 위대한 승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블레셋 사람들은 그 궤를 트로피가 아닌 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7개월이나 언약궤를 지켰을까? 그들은 처음에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승리라고 느꼈던 그런 멋진 "트로피"를 포기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의 무익함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반드시 속건제물과 함께 돌려주어야 합니다" (3절). 블레셋의 제사장들은 그들이 주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 앞에서 그들의 슬픔과 회개를 표시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다섯 개의 금종기와 다섯 마리의 금쥐를 바쳐야 합니다" (4절). 그 구체적인 제물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신 분이 주님임을 그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이 재앙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내리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 하나님께 사죄하고, 그분이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재앙에 종양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5장에서는 재앙이 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종양이 쥐에 의해 옮겨진 흑사병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사무엘상 5장 11절에 언급된 또 다른 역병이나 재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온 성읍에 치명적인 파괴가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손이 매우 엄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오. 그러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신들과 여러분의 땅에서 그의 손을 거두실 것이오" (5절).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한 방법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의 신들을 심판하고 그들의 땅을 관할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지만, 그들의 신들 대신에 하나님을 경배하지는 않았다.

"이집트 백성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굳힌 것처럼 당신의 마음을 굳게 하실 셈이오?" (6절) 블레셋 사람들은 출애굽기 이야기를 인지하고, 주님에게 마음을 굳히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실수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블레셋의 지도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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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ow therefore take and prepare yourselves a new cart, and two milk cows, on which there has come no yoke; and tie the cows to the cart, and bring their calves home from them;
8. and take Yahweh’s ark, and lay it on the cart. Put the jewels of gold, which you return him for a trespass offering, in a coffer by its side; and send it away, that it may go.
9. Behold; if it goes up by the way of its own border to Beth Shemesh, then he has done us this great evil; but if not, then we shall know that it is not his hand that struck us. It was a chance that happened to us.”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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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 새 수레 하나와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젖이 나는 암소 두 마리를 준비하시오. 그리고 소들을 수레에 매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 위에 올리시오. 그리고 속건제물로 그에게 돌려보낼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돌려보내십시오. 9. 보시오, 만일 수레가 궤가 있었던 곳으로 올라가면, 그분이 이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린 것이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라 우리에게 우연히 생긴 재앙인 것을 알 수 있소. 

사무엘상 6:7-9.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우연인가?

새 수레 하나와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젖이 나는 암소 두 마리를 준비하시오" (7절).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은 독특한 실험을 했다. 그들은 재앙의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00%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테스트를 고안했다. 사람들은 거의 항상 회개하기를 꺼리고, "불필요하게" 회개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시험은 단순했습니다.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젖이 나는 암소 두 마리를 수레에 메고, 그 어린 송아지들은 떼어서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암소의 "모성 본능"은 송아지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래 집으로(블레셋에 있는)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아마 소들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울었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정말로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도록 "강요"하는 독특한 시험을 고안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 위에 올리시오" (8절). 하나님은 그 궤가 수레에 실려 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셨다. 그는 그것을 궤의 측면에 고리 모양의 막대기로 운반하기를 원하셨다 (우측 이미지).

궤에는 "손잡이"가 없고 직접 손에 들고 운반할 수가 없었다. 대신, 그것은 금으로 덮인 나무 채를 궤의 각 귀퉁이에 있는 금 고리에 꽂아서 운반하도록 되어있었다. 채는 고리에 꽂혀 있고, 궤와 접촉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채를 만지는 것 외에, 언약궤를 만지는 것은 금지되었다(출25:12-15).

이렇게 방주를 운반하는 것은 율법에 의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그분의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고 또 그 궤를 어깨에 짊어질 레위인들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에 눈감아 주셨다." (Poole)

"그리고 속건제물로 그에게 돌려보낼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돌려보내십시오"(8절). 블레셋 사람들은 지혜로웠을까요? 그들은 언약궤를 열지 않고,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속건제물로 궤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정말로 그들은 궤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으나 그들의 호기심이 그들을 죄악으로 인도하지 않도록 조심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라 우리에게 우연히 생긴 재앙인 것을 알 수 있소" (9절). 과연 종양과 다른 심판들이 우연히 생겼을까요? 학자의 간단하지만은 않은 설명입니다(아래):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망상에 빠진다. 한 생화학자는 이렇게 썼다. "모든 혁신과 생물권의 모든 창조물의 원천에는 우연만이 존재한다. 진화의 거대한 구조의 바로 근저에 있는, 절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맹목적인 순수한 우연뿐이 있다." (Jacques Monod)

그러한 힘을 "우연"으로 설명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왜냐하면 우연에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전이 뒤집힐 때, 그것이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이다. 하지만, "우연"이 그것을 앞면으로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앞면이나 꼬리에 착지 여부는 공중에서 날아갈 때의 기류와 기압의 힘, 잡는 위치 등에 기인한다. 우연은 확률을 설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과응보의 세계에 살고 있고, 우연이 대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한 대의이다.

칼 세이건이 연방 정부에 우주 공간에서 지능적인 생명체를 찾기 위한 보조금을 청원했을 때, 그는 먼 우주에서 오는 무선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초정밀 감지 기기를 사용하여 생명체를 찾기를 희망했다. 그가 그러한 무선 신호를 받았을 때, 그는 그 신호들이 지능적인 생명체에 의해 전달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순서와 패턴을 찾았다. 같은 방식으로, 전 우주의 질서와 패턴은 그것이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능적인 생명체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무선 신호에서 끊임없이 (패턴이 없는 정적인 형태로) "우연"을 감지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쉽지만은 않은 학자들의 설명을 번역.편집했습니다. 아직 젖이 나는 암소가 끄는 언약궤의 이야기가 우주 이야기로 확대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끝을 모르는 우주는 신비롭습니다. 어떤 질서와 패턴이 없다면 우주는 조용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 질서는 힘(권위)에서 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동전이 뒤집힐 확률이 50%로 알고 있지만 그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어떠한 힘이 그 확률을 바꿉니다. 우주가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듯 우리도 어쩌다가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우주공간에서 우연을 감지하지만 그 우연을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과관계(因果關係; cause-and-effect relationship)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도 존재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끝없는 인과관계 안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는 과학자들도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직 멍에를 메어본 (수레를 끌어 본) 적이 없는 암소가 젖먹이 송아지들을 떼어내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궤가 온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미지 소스: https://ifiwalkedwithjesus.com/

10. The men did so, and took two milk cows, and tied them to the cart, and shut up their calves at home.
11. They put Yahweh’s ark on the cart, and the coffer with the golden mice and the images of their tumors.
12. The cows took the straight way by the way to Beth Shemesh. They went along the highway, lowing as they went, and didn’t turn aside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and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nt after them to the border of Beth Shemesh.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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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블레셋 사람들은 그대로 하여, 젖이 나는 소 두 마리를 데려와서 수레에 메우고 그 새끼들은 집에 가두었다. 11. 그들은 여호와의 궤를 수레 위에 올리고, 금쥐와 금종기 형상들이 있는 상자도 수레 위에 올렸다. 12. 소들이 벧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갔다. 그들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큰 길을 따라 계속해서 갔다.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사무엘상 6:10-12. 이스라엘로 향하는 소들

"소들이 벧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갔다" (12a절). 그 암소들은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멍에를 거부하고, 어린 송아지들을 걱정하여 블레셋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소들이 벧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갔다 (12절). 하나님은 이것을 우연에 맡기지 않으셨다.

위의 지도에서 노란색 지역이 벧세메스이고 붉은색 지역이 기럇여아림입니다. 그 길이는 약 10마일(16km) 거리로 사람이 걸어도 먼 길인데, 이것은 놀라운 기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상상해 봅니다! "소들이 벧세메스 쪽으로 가는 길로 곧장 갔다. 그들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큰 길을 따라 계속해서 갔다" (12절). 소들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성읍으로 자신의 송아지들을 뒤에 남겨두고 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멈추지 않고 곧장 걸어갑니다. 송아지에게 젖을 주기 위해 뒤돌아서지도 않습니다. 

이 여정에서 왜 하나님은 소들을 도구로 사용하셨을까?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간 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떠났다!" 떠난 영광을 하나님은 소 두 마리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미천한 소 두 마리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이야기하십니다. 어떨 때는 두렵고, 어떨 때는 자신 없고, 또 어떨 때는 이유 없이 자신만만하게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도 걷고 있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하늘 왕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만물이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우리도 그 움직임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의 하나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겸손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한 곳을 향해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블레셋이 소를 이용한 이상한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 그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였듯이).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큰 길을 따라 계속해서 갔는 것오로지 우리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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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he people of Beth Shemesh were reaping their wheat harvest in the valley; and they lifted up their eyes, and saw the ark, and rejoiced to see it.
14. The cart came into the field of Joshua of Beth Shemesh, and stood there, where there was a great stone. Then they split the wood of the cart, and offered up the cows for a burnt offering to Yahweh.
15. The Levites took down Yahweh’s ark, and the coffer that was with it, in which the jewels of gold were, and put them on the great stone; and the men of Beth Shemesh offered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d sacrifices the same day to Yahweh.
16. When the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 had seen it, they returned to Ekron the same day.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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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 때, 골짜기에서 밀 수확을 거두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눈을 들어 궤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 그곳에서 섰다. 그곳에는 큰 돌 하나가 있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렸다. 15.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와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들이 있는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들은 그것들을 큰 돌 위에 올렸다. 그리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같은 날 여호와께 번제와 희생제물을 드렸다. 16. 블레셋 다섯 방백들이 이것을 보고 같은 날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사무엘상 6:13-16. 벧세메스에서 영광과 기쁨으로 맞는 궤

"궤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13절).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던 날 제자들이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돌아가신 하나님을 다시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밀 수확을 거두던 어느날(5월에서 6월 사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았다.

물론, 하나님은 결코 돌아가시지 않았고 그들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느꼈고, 정말 죽은 것처럼 절망하고, 낙담하고, 희망이 없었다. 그들에게 이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 같았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 그곳에서 섰다" (14a절). 블레셋 성읍에서 약 10 마일 인도를 받고 이쪽 저쪽으로 가지도 않고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 그곳에서 궤가 멈추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렸다" (14b절).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할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정말 큰 대가였다. 소와 수레는 비싼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의 제물은 모세율법을 위반한 것이다. 첫째, 그들은 금기된 암컷을 주께 드렸다(레 1:3; 22:19). 둘째, 그들은 성막에서 떨어져 주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신 12:5-6).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놀라운 상황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의심없이 영광을 받으셨다.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와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들이 있는 상자를 내려놓았다"(15절). 이스라엘 자손은 율법이 명한 대로 레위인들이 궤를 다루도록 조심하였다(민 4:1-6, 15). 벧세메스는 제사장 성읍이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곁에 있었다(수 21:16).

"블레셋 다섯 방백들이 이것을 보고 같은 날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16절). 그들은 그들이 궤를 가지고 있는 동안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우연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이루시기에 정교하고 어려운 시험을 준비했고, 그들은 하나님이 그 시험에 합격하실지 직접 관찰했다. 그들의 반응은 기록이 없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설득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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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These are the golden tumors which the Philistines returned for a trespass offering to Yahweh: for Ashdod one, for Gaza one, for Ashkelon one, for Gath one, for Ekron one;
18. and the golden mice, according to the number of all the cities of the Philistines belonging to the five lords, both of fortified cities and of country villages, even to the great stone, on which they set down Yahweh’s ark. That stone remains to this day in the field of Joshua of Beth Shemesh.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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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돌려드린 금종기들은 이러하다: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을 위해 하나씩이었다. 18. 금쥐도 있었는데, 그 수는 성벽이 있는 성읍과 시골의 마을까지,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올린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의 모든 성읍들의 수에 따른 것이었다.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그대로 있다.  

 

사무엘상 6:17-18. 언약궤와 속건제물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언약궤와 함께 보낸 상자 안에는 다섯 성읍을 상징하는 금으로 만든 다섯 개의 종양의 종기와 다섯 성읍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금으로 만든 쥐가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하나님이 보내신 쥐로 인해 종양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블레셋 방백들의 회개와 그로 인해 종양의 고통을 받은 백성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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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He struck of the men of Beth Shemesh, because they had looked into Yahweh’s ark, he struck fifty thousand seventy of the men. Then the people mourned, because Yahweh had struck the people with a great slaughter.
20. The men of Beth Shemesh said, “Who is able to stand before Yahweh, this holy God? To whom shall he go up from us?”
21. They sent messengers to the inhabitants of Kiriath Jearim, saying, “The Philistines have brought back Yahweh’s ark. Come down, and bring it up to yourselves.”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다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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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 안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치셨다. (오만) 칠십 명의 사람을 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크게 살육하여 치셨기 때문에 백성이 슬피 울었다.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말했다. "누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설 수 있겠는가?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 올라가시게 할 것인가?' 21. 그들은 기약여아림 주민들에게 전령들을 보내서 말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돌려 보냈소. 내려와서 그것을 당신들에게로 가지고 가시오."

 

사무엘상 6:19-21. 벧세메스 사람들을 치시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 안을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치셨다" (19a절). 언약궤는 고핫 가문의 특정 레위인이 만지고 다루기만 하고, 그들도 궤 자체를 만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기구들 덮으면, 고핫 자손이 궤를 메라. 그러나 성물을 만지면 죽을 것이다: 민 5;15)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궤를 만지는 것뿐만 아니라) 궤 안을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수레로 궤를 운반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적절하게 궤를 들여다보는 것은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 때문에, 하나님께서 숨기시려고 선택하신 것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 비밀을 캐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는 이런 생각이 나타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사 15:8). 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15:9) 

그리고 학자는 덧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아서는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오만) 칠십 명의 사람을 치신 것이다" (19b절). 성경에서 이 숫자를 괄호로 표시한 버전이 있는데 (오만 칠십이 아닌) 칠십 명을 치신 것도 엄청난 살육입니다. 어떤 학자는 '오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칠십 명을 치셨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속한 것을 알고 싶어도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될 것이 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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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The men of Kiriath Jearim came, and took Yahweh’s ark, and brought it into Abinadab’s house on the hill, and consecrated Eleazar his son to keep Yahweh’s ark.
2. From the day that the ark stayed in Kiriath Jearim, the time was long; for it was twenty years;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after Yahweh.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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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겼다. 그들은 궤를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가지고 가서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서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물게 된 날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약 이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애통해했다.  

 

사무엘상 7:1-2. 기럇여아림에서의 이십 년

"기럇여아림 사람들" (1a절). 그들은 그 언약궤를 존경과 영광으로 대했지만, 그것을 성막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 가져왔다.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서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1b절). 엘리아살이 제사장의 혈통인지 그의 성직이 합법적인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옳은 일을 하려는 열망을 반영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절). 이스라엘은 궤를 되찾았지만,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다시 언약궤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애통해했다" (2b절).

그들은 탄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성읍은 폐허가 되었고, 군대는 패배하였고, 블레셋 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무엘은 어디에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이십 년 동안에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짐작이 그는 바가 있다. 그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청중을 모을 수 있는 조용한 곳에서 설교하고, 백성에게 그들의 죄악을 경고하고, 그들을 움직여서 여호와를 구하도록 하고, 그들 민족의 삶에 영성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Spurgeon)

해피엔딩일까요? 마지막 구절에서 작가는 기록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애통해했다". 그들은 빼앗긴 언약궤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배반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블레셋의 지배를 받았고 그들의 반성의 시기는 (오랜 시간약 이십 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불행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위 지도의 노란색)에서 다윗왕에 의해 예루살렘(여부스)으로 가기까지 20년 간 이 장소에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의 일정표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해주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없으셨지만 하나님의 궤로 행동하심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매일성경 QT가 매일 더 길어집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하나님의 언약궤와, 그 궤를 메지 않고 소 수레에 실어서 기럇여아림으로 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용하신 암소 두 마리. 그 과정에서 나오는 사람들, 사건들, 물건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인과관계) 등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연은 없다. 너희는 놀라운 이 우주조화의 일부에 불과하고 내가 창조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samuel-6/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samuel-7/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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