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을 피해 놉으로 도망친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 거룩한 빵과 골리앗의 칼을 받는다. 그러나 도엑이라는 사울의 신하에게 들킨 다윗은 가드로 다시 도망친다. 가드 왕 아기스를 만나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기 위해 그는 미친 척한다.
1. Then David came to Nob to Ahimelech the priest. Ahimelech came to meet David trembling, and said to him, “Why are you alone, and no man with you?”
2. David said to Ahimelech the priest, “The king has commanded me to do something, and has said to me, ‘Let no one know anything about the business about which I send you, and what I have commanded you. I have sent the young men to a certain place.’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다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사무엘상 21:1-2. 사울을 피해 놉으로 온 다윗
1.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러 놉으로 갔다. 아히멜렉은 떨면서 다윗을 영접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 혼자이고 아무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소?"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말했다. "왕이 나에게 할 일을 명령하면서 말하셨소. '내가 너를 보낸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내가 내 부하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보냈다.'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러" (1a절). 다윗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갔다.
"아히멜렉은 떨면서 다윗을 영접하면서" (1b절). 다윗과 같이 유명한 사람이 유다의 마을을 혼자 떠돌고 다니는 일이 아히멜렉에게는 흔치 않은 일로 보였다. 그래서 아히멜렉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떨면서 다윗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 혼자이고 아무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소?"
아히멜렉은 다윗과 사울의 갈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다윗이 혼자 여행하는 것은 그에게 낯설고 위험해 보였다. 게다가 우리는 다윗이 피곤하고, 지치고, 부스스하고, 아마도 많이 울었던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왕이 나에게 할 일을 명령하면서 말하셨소" (2절).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도착했으나 자신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시켜서 온 것처럼 가장을 하고(내가 너를 보낸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혼자 온 것을 수상하게 여긴 제사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내 부하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혼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은 다윗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여러 가지로 다윗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고 동정도 할 수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같거나 더 나쁜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 거짓말을 끔찍하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삼상 22:22).
3. Now therefore what is under your hand? Please give me five loaves of bread in my hand, or whatever is available.”
4. The priest answered David, and said, “I have no common bread, but there is holy bread; if only the young men have kept themselves from women.”
5. David answered the priest, and said to him, “Truly, women have been kept from us as usual these three days. When I came out, the vessels of the young men were holy, though it was only a common journey. How much more then today shall their vessels be holy?”
6. So the priest gave him holy bread; for there was no bread there but the show bread that was taken from before Yahweh, to put hot bread in the day when it was taken away.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사무엘상 21:3-6. 다윗은 거룩한 빵을 청하고 받는다
3. 그런데 수중에 무엇이 있는지요? 빵 다섯 덩이나 무엇이라도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시오."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했다. "보통 방은 없으나 거룩한 빵은 있습니다. 당신의 부하들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먹어도 좋소."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삼일 동안 여자와 가까이하지 않았소. 내가 나왔을 때 보통 여행길이라도 부하들의 그릇이 깨끗했소. 그런데 오늘 더욱이 그들의 그릇이 깨끗하지 않겠소?" 6. 제사장이 거룩한 빵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곳에는 여호와 앞에 차려 놓았던 빵 말고는 다른 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설병 곧 하나님 앞에 따뜻한 빵을 드리는 날 물려 낸 것이었다.
"빵 다섯 덩이나..." (3절). 다윗이 하나님의 성막에 이러렀을 때 그는 배가 고파서 빵과 먹을 것을 요구합니다.
"보통 빵은 없으나 거룩한 빵은 있습니다" (2절). 이 빵은 진설병(陳設餠 , the bread of the Presence)으로, 지성소 앞 상 위에 6개씩 두 줄로 정렬해 놓은 12 덩어리의 무교병이고, 매 안식일마다 새 빵을 가져왔고 묵은 빵은 성소에서 제사장이 먹었다(자료: 라이프성경사전). 12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의미하고, 이 빵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지속적인 교제를 상징합니다.
여기에서는 'showbread(shewbread, 진설병)', 한자로 진설병(陳設餠)은 베풀 진(陳), 베풀 설(設), 떡 병(餠)라고 번역하는데 학자의 설명입니다:
빵의 중요성과 의미는 빵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쇼브레드는 "얼굴의 빵"을 의미한다. F.B. 마이어는 진설병을 '존재-빵'이라고 부른다. 쇼브레드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빵을 먹는 것으로, 주님의 친구이자 손님으로, 주님의 환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문화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영구적이고 신성한 우정의 유대를 형성했다.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하나님 앞에 따뜻한 빵을 드리는 날 물려 낸 오래된 빵을 주었습니다. 물려 낸 오래된 빵은 제사장들이 먹는 거룩한 빵이었기 때문에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부하들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4절). 물려 낸 진설병은 제사장들이 먹을 것이었다.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한다(레 24:9). 레위기의 이 구절은 특별히 사제들만 진설병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진설병은 거룩하게 여겨져야 하며 일반적으로 분배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그래서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진설병을 주기 전에 기본적인 수준의 의례적인 청결을 요구했다.
"우리는 삼 일 동안 여자와 가까이하지 않았소" (5절). 다윗은 동행이 있는 것처럼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는 혼자 여행 중이었습니다.
"제사장이 거룩한 빵을 다윗에게 주었다" (6절).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빵을 주면서, 제사장의 관습은 어겼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기지 않았다. 그는 인간적인 필요가 레위기의 말씀 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통에 반하여 먹는 것으로 종교적 관습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자, 예수님은 아히멜렉이 한 일을 이용하여 그 문제를 설명하셨다(마 12:1-8). 예수께서는 아히멜렉이 한 일을 인정하셨고, 아히멜렉과 같은 땅에 서서 그를 칭찬하셨다.
아히멜렉과 예수님의 요점은 강력하다: 인간의 전통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이 빵은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거기에 '만이'를 넣는 것은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의 확장이나 적용을 하나님의 말씀 자체와 같은 수준으로 높여서는 안 된다.
학자의 설명은 중요합니다. 이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다'라는 느슨한 표현에 하나님이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다라고 단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배고픈 다윗도' 먹을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이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확장하고 적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답으로 끌고 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접합니다. 예수님도 아히멜렉의 이 판단을 칭찬하셨습니다.
7. Now a certain man of the servants of Saul was there that day, detained before Yahweh; and his name was Doeg the Edomite, the best of the herdsmen who belonged to Saul.
8. David said to Ahimelech, “Isn’t there here under your hand spear or sword? For I have neither brought my sword nor my weapons with me, because the king’s business required haste.”
9. The priest said, “Behold, the sword of Goliath the Philistine, whom you killed in the valley of Elah, is here wrapped in a cloth behind the ephod. If you would like to take that, take it; for there is no other except that here.”
David said, “There is none like that. Give it to me.”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사무엘상 21:7-9.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받는다
7. 그날 사울의 신하들 중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엑이라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들 중 우두머리였다.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는지요? 왕의 일이 급해서 내가 칼과 무기를 가져오지 못했소." 9. 제사장이 말했다. "당신이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소. 필요하면 그 칼을 가지고 가시오. 여기에 그 칼 외에는 다른 칼은 없소." 다윗이 말했다. "그 같은 칼이 있겠소? 그것을 내게 주시오."
"도엑이라는 에돔 사람" (7a절). 도엑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에돔 사람이다. 그는 사울의 목자들 중 우두머리였다. 여기서 '우두머리(chief)'라는 단어는 '힘있는'의 뜻이지만 폭력적이거나 완고하다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도엑은 자신이 폭력적이고 완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다" (7b절). 도엑과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가 성막에서 여호와 앞에서 영적인 일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이스라엘 왕을 위해 그의 고용과 관련된 의식적인 요구 사항을 이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혹시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는지요?" (8절). 우리는 다윗이 왜 무기를 원했고 왜 요청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이 왕의 일에 대해 거짓말을 계속한 것은 슬픈 일이다. 다윗은 필사적으로 왕의 일을 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왕의 일이 다윗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가의 해설이 아이러니한데, 다윗이 창이나 칼이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위함이고 자신의 일이 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해가 되는 거짓말을 합니다: "왕의 일이 급해서 내가 칼과 무기를 가져오지 못했소". 골리앗과의 만남에서 신앙심에 고취되어 하늘을 찌르던 그 당당함은 어디를 가고 그는 자신이 골리앗을 죽인 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슬픈 현실임에 틀림없습니다.
"골리앗의 칼" (9절). 다윗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행복해 보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 같은 칼이 있겠소?" 그러나 다윗이 이 칼을 쥐었을 때, 그는 그가 어떻게 그 전쟁을 이기게 되었는지를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는 지금 이상 없는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 없는 것은 주님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막대기와 물매와 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것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학자는 설명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무기고에 골리앗의 칼을 가질 수 있지만, 골리앗을 죽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더 좋은 장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이제 양치기 도구보다 블레셋 칼을 더 신뢰하고 있는가? 골리앗의 칼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주께서는 이전에 그 칼을 사용하셨지만(삼상 17:51), 철저한 믿음의 맥락에서만 사용하셨다.
다윗은 위로와 도움과 지도를 받으러 하나님의 집에으로 달려갔지만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그가 원하던 빵과 칼이 있습니다. 그 칼을 보면서 다윗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칼은 더 이상 이전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 같은 칼이 있겠소? 그것을 내게 주시오" (9절). 어떤 것이 소중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가 그것을 원하게 된다. 시련이나 스트레스의 시간 중에 우리가 그 훌륭한 것을 더욱 원하게 된다. 이것이 골리앗의 칼에서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에서는 더욱 진실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것을 저에게 주세요."
10. David arose, and fled that day for fear of Saul, and went to Achish the king of Gath.
11. The servants of Achish said to him, “Isn’t this David the king of the land? Didn’t they sing to one another about him in dances, saying, ‘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 thousands?’”
12. David laid up these words in his heart, and was very afraid of Achish the king of Gath.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사무엘상 21:10-12. 가드로 도망친 다윗은 곤경이 빠진다.
10. 그날,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서 도망쳐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 아닙니까? 무리가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네'라고 노래했던 바로 그 사람 아닙니까?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매우 두려워했다.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서 도망쳐" (10a절).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 않고 교묘한 거짓말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지속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다. 결국 그는 도망쳐야 했습니다다. 그런데 아히멜렉에게서 골리앗의 칼을 받아들고 간 곳이 골리앗의 고향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적들 사이에서 평화로운 피난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 아닙니까?" (11절). 가드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이스라엘 땅의 왕으로 인정하였다. 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울왕보다 다윗의 운명을 더 잘 이해했다.
"무리가 춤추며... 노래했던 바로 그 사람 아닙니까? " (11b절). 이스라엘 전국을 휩쓴 다윗의 노래와 춤은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18:6-7). 만약 다윗이 이전에 그 사실을 몰랐다면, 이제 자신의 명성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매우 두려워했다" (12절). 다윗은 자신이 발각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아기스 왕이 골리앗을 죽인 사람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편 56편에 나오는 다윗의 말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시편의 제목은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이며 그가 지은 노래이다. 사무엘 21장에는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다윗이 가드에 왔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다윗은 가드에서 불경스러운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 동정심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틀렸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가드에서 포로로서 두려움에서 찬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아래는 해당 시편에 대한 QT공부를 한 내용 링크합니다:
시편 56편은 요나단으로부터 출발하여 가드로 계속되던 미끄러운 길이 이제 멈추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다시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이것이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이었다. 사울은 두 사람 모두 미끄러졌지만, 다윗은 주께로 돌아섰다.
13. He changed his behavior before them, and pretended to be insane in their hands, and scribbled on the doors of the gate, and let his spittle fall down on his beard.
14. Then Achish said to his servants, “Look, you see the man is insane. Why then have you brought him to me?
15. Do I lack madmen, that you have brought this fellow to play the madman in my presence? Should this fellow come into my house?”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사무엘상 21:13-15.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하는 다윗
13. 그래서 다윗은 그들 앞에서 행동을 변하여 그들 앞에서 미친 척하였다. 대문짝을 긁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기도 했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보라! 저 사람이 미친 것을 너희가 보지 않느냐? 왜 이런 사람을 나에게 데려왔느냐? 15. 나에게 미친 사람이 부족해서 이런 사람을 데려와서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어찌하여 이 자를 내 집에 들어오게 했느냐?"
"그들 앞에서 미친 척하였다" (13절). 다윗은 성문의 대문짝을 긁고, 수염에 침을 흘리기도 하면서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우리는 다윗의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학자의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수염에 묻은 침은 특히 설득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문화에서 남자들에게 이 행동은 제정신이 아닌 남자들만이 허락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수염에 대한 모독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Jamieson, Fausset, and Brown)
"저 사람이 미친 것을... 왜 이런 사람을 나에게 데려왔느냐?" (14절). 다윗의 계획은 효과가 있었다. 아기스는 결국 이 사람이 다윗이 아니거나, 그가 너무 불쌍해서 그를 놓아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다윗이 미친 척할 때, 성령 안에서 걸었을까, 아니면 육신 안에서 걸었을까? 몇몇 논평가들은 다윗이 육체에 있었고 자신을 신뢰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윗이 도망치기 전 시편 56편의 변화가 일어났으므로, 주께서 도망의 길로 인도하셔서 그를 겸손하게 해 주실 것이 이치에 맞았다. 다윗이 거짓말로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불경한 사람들 사이에서 피난처를 찾으려 할 때, 그는 정말 미친 듯이 행동했다. 다윗이 회개하고, 자비를 청하고, 주를 다시 신뢰하니,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내가 너를 그곳에서 꺼내 줄 것이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목숨을 걸고 가드를 탈출했을 때의 기쁨의 선언하는 노래입니다. 시편 34편의 제목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시인은 주님에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시편 34편은 아름답게 시작합니다. 아래 QT 공부하면서 올린 글 링크합니다:
"내가 늘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언제나 내 입에 있을 것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할 것이니, 겸손한 사람들은 그 말을 듣 기뻐할 지어다. 오, 나와 함께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우리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자. 내가 여호와를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구원하셨다." (시 34:1-4)
자신이 직접 만든 혼란에서 주님께서 건져내셨기 때문에, 다윗은 더욱 더 기뻐하고 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선함은 우리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을 때 우리를 인도하심으로 보인다.
도망자의 삶을 시작하는 다윗은 벌써 하루 하루가 괴로운 나날입니다. 또 어떤 사건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samuel-21/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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