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히브리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경고가 심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약속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보다 앞서 가셨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 격려한다.
9. But, beloved, we are confident of better things concerning you, yes, things that accompany salvation, though we speak in this manner.
10. For God is not unjust to forget your work and labor of love which you have shown toward His name, in that you have ministered to the saints, and do minister.
11. And we desire that each one of you show the same diligence to the full assurance of hope until the end,
12. that you do not become sluggish, but imitate those who through faith and patience inherit the promises.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6:9-12.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니 낙심하지 말라
9.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비록 이렇게 말하지만, 여러분에게 더 좋은 것, 즉 구원을 동반하는 것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10.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여러분이 보여준 행위와 사랑의 노고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으로 여러분은 성도들을 섬겼고 지금도 섬기고 있습니다. 11. 우리는 여러분 각자가 희망에 찬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같은 근면함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12. 게으르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받기 바랍니다.
"우리가 비록 이렇게 말하지만"(9a절). 앞의4-8절의 강력한 경고 뒤에 9절은 '그러나(but)'로 시작합니다. 경고 뒤에 오는 이런 고무적인 말들은 경고의 중요성을 더욱 각인시키려는 것입니다. 독자들의 정신적인 위험은 우울한 낙담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경고도 필요했지만 격려도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더 좋은 것... 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9b절). 저자는 비록 심하게 경고하며 말했지만 독자들이 예수를 따라 구원의 동반자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들이 믿음을 놓지 않고 계속 붙잡는 것이 구원으로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이 보여준 행위와 사랑의 노고를 잊지 않으십니다." (10a절). 우리가 낙담할 때,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위해 우리가 한 모든 것을 잊으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잊으신다는 것이 자신의 본성을 부정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다 보고 기억하신다.
사람은 우리가 보여준 선행과 사랑의 노고를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숨을 곳이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악행도 선행도 숨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각자가 희망에 찬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같은 근면함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10b절). 히브리서의 저자는 신자들에게 계속하라고 권하며 코치처럼 격려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일을 계속하고, 그 희망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 약속의 상속자들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하지 못할 때, 낙담은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곤 한다.
"믿음과 인내로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받기 바랍니다" (12절). 저자는 낙담에 굴복하지 말고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기억합니다. 그 또한 우리와 같이 완벽한 믿음과 완벽한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우리의 약점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믿음과 인내심을 얼마라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게으르지 말라 경고합니다. 우리가 낙담하면, 게을러지고, 결국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적인 블레셋의 땅에 있을 때 완전히 불타버린 유령 마을이 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한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최악의 상황에서,
그러나, 다윗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삼상 30:6)
다윗은 다른 누군가가 그를 강하게 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힘을 다했습니다. 마찬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습니다.
13. For when God made a promise to Abraham, because He could swear by no one greater, He swore by Himself,
14. saying, “Surely blessing I will bless you, and multiplying I will multiply you.”
15. And so, after he had patiently endured, he obtained the promise.
16. For men indeed swear by the greater, and an oath for confirmation is for them an end of all dispute.
17. Thus God, determining to show more abundantly to the heirs of promise the immutability of His counsel, confirmed it by an oath,
18. that by two immutable things, 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 we might have strong consolation, who have fled for refuge to lay hold of the hope set before us.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6:13-18. 하나님이 약속하시니 낙심하지 말라
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분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 자신에게 맹세하시며 14.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고, 너를 번성하게 하겠다." 15. 그래서 그는 끈기 있게 기다려서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확인을 위한 맹세는 그들에게 모든 논쟁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17. 하나님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그 말씀이 변하지 않음을 확실히 보이시기로 결심하시고 그것을 맹세로 확인하셨습니다. 18.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로 우리 앞에 있는 소망을 붙들기 위해 피난처를 찾은 우리는 큰 위안을 받습니다.
"그는 끈기 있게 기다려서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15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오셨고 그의 약속을 맹세하셨다. 그는 더 위대한 분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 자신에게 맹세하셨다. 이 맹세는 하나님의 약속(주님의 성격과 같이)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로... 우리는 큰 위안을 받습니다" (18절). 변하지 않는 두 가지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맹세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중에서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 약속의 절대적인 신뢰는 우리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중 누가 감히 이것을 의심하겠습니까? 감히 나서서 하나님의 맹세를 의심하겠다고 말할 그런 모진 죄인이 있겠습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Spurgeon)
큰 위안 (18절): 당신보다 더 크신 이가 없으신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과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 소망을 붙들기 위해 그의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큰 위안을 주시고, 우리는 받습니다. 스퍼전은 낙담한 우리에게 오는 큰 위안을 설명합니다:
"가난에 찌든 한 사람이 자신의 아이들이 빵을 달라고 우는 소리를 들을 때, 파산되어 피할 수 없는 손실이 코앞에 닥칠 때, 가난한 사람이 아내를 잃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죽을 때, 지상의 모든 소득과 위로가 차례로 무너질 때 - 그때 우리는 강한 위로가 필요하다. 그것은 당신의 그림 속의 시련이 아니라 진짜 시련이고, 당신의 상상 속의 고난이 아니라, 진짜 고난이고 인생의 세차게 몰아치는 풍풍우이다... "(Spurgeon)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큰 위로는 우리에게 살아갈 유일한 힘을 주는 에너지원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소망을 붙들기 위해 피난처를 찾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희망의 피난처가 마련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격려의 또 다른 이유이다. 우리는 이 소망의 피난처는 민수기 35장에서 설명된 모세의 율법이 명령한 도피성들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예수님과 도피성들은 모두 어려운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다. 피난처는 접근이 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 예수님과 도피성 모두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피신처로 오는 사람은 어려울 때 외면당하지 않는다.
- 예수님과 도피성 모두 거주할 장소였다. 어려울 때, 누구도 단지 구경만 하려고 피난처에 오지 않았다.
- 예수님과 도피성 모두 어려운 사람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이 피난처가 없다면 멸망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예수님과 도피성 모두 그들의 경계 안에서만 보호를 제공한다. 제공된 피난처 밖으로 나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 예수님과 도피성은 대제사장(예수)의 죽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제공했다.
- 그러나 예수님과 도피성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피난성들은 무죄한 사람들을 도왔을 뿐이고, 죄인들은 예수께로 와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다
민수기에서 예수님이 없는 도피성은 아무 쓸모 없듯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없는 피난처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9. This hope we have as an anchor of the soul, both sure and steadfast, and which enters the Presence behind the veil,
20. where the forerunner has entered for us, even Jesus, having become High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6:19-20. 하나님이 영광으로 인도하시니 낙심하지 말라
19.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안전하고 튼튼하여, 휘장 뒤의 지성소로 들어가게 합니다. 20. 그곳으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들어가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19a절). 고대 세계에서 닻은 일반적인 희망의 상징이었다. 여기서 저자의 생각은 우리가 단단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휘장 뒤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잔잔한 바다에는 닻이 필요 없다. 날씨가 거칠수록, 여러분의 닻은 더 중요하다.
- 배가 난파되지 않도록 닻을 내려서 배를 고정시켜야 한다.
- 배를 안정시키고 탑승자들이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닻이 필요하다.
- 우리의 배가 그 동안 해왔던 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닻이 필요하다.
우리가 희망을 붙잡아야 하지만, 배에게는 닻이 필요하다. 닻 자체는 강한 고정장치가 있어 해저에 고정되어 있을 수 있지만, 배에 단단히 부착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닻이 배를 잡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이것은 희망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닻의 비유는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땅 아래가 아니라 하늘 위쪽에 정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박해 있다.
"우리 닻은 다른 닻과 같다. 사용을 해야 할 때는 보이지 않는다. 얕은 물에 있는 닻이 아니라면, 사람이 닻을 볼 때 그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닻을 써야 할 때 그것은 없어진다. 물보라가 넘치고... 닻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형제여, 희망은 어디 있나요? 당신은 볼 수 있기 때문에 믿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Spurgeon)
"휘장 뒤의 지성소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곳으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들어가셨습니다" (19-20절). 이 자신에 넘치고, 닻과 같은 희망이 우리를 하나님의 지성소로 인도한다. 희망은 바로 낙담한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약이다.
선구자... 예수님도: 예수님께서 선구자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접근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구약성서 대제사장은 선구자로서 휘장에 들어가지 않고 대리인으로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를 따라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바로 앞(지성소)으로 들어가셨다.
'선구자'는 고대에 군사 정찰병이었다. 선구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를 것을 알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선구자라면, 우리는 그 후주자들이다. 후주자가 없으면 선구자도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고 예수님을 따라 뛰어야 한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가셨고 그는 우리의 본보기이다.
"휘장 뒤의... 그곳으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19-20절). 성전 비유는 작가에게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라는 이전 주제를 상기시킨다(히 5:6-10). 이 생각은 다음 장까지 계속된다.
맞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닻을 내리고 정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닻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는지 우리는 확인해야 합니다. 닻이 없으면 배는 표류하게 됩니다. 표류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인생의 파도에 휩쓸리고 표류하기 때문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6/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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