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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히브리서(Hebrews)7:1-10(아브라함보다 위대한 멜기세덱)

by 미류맘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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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앞에서 진술한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히 2:17) 임을 멜기세덱(창 14:18-20)과 비교하여 증명합니다. 우선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고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했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위대함을 증명합니다.

 

enduringword의 설명으로 7장을 시작합니다:

  1. 저자는 2장 17절에서 소개한 주제, 즉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를 설명한다. 

    그는 히브리서 5장 10절에서 이 문제를 논하기 시작했지만, 낙담한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기독교 생활이 지속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할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좋은 탐정소설의 작가처럼, 히브리인들에게 작가는 구약성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인물을 끌어내고 그 인물을 두드러지게 한다.

  2. 이 유대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대제사장으로 예수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 생각에 대해 상당한 지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예수께서 제사장 지파(레위 지파)나 아론의 가족의 제사장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유대 기독교인들이 복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러한 지적 문제들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지적 장애는 예수 안에서 그들이 성숙해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지적 문제에 매달려 예수님과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만약 기독교인이 창조와 진화, 기적의 타당성 등의 문제들에 매달려 있다면, 그들은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수님과 함께 전진해야 한다.

  3. 이 장은 또한 우리가 사제직과 율법이라는 구약성서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1. For this Melchizedek, king of Salem, priest of the Most High God, who met Abraham returning from the slaughter of the kings and blessed him,
2. to whom also Abraham gave a tenth part of all, first being translated “king of righteousness,” and then also king of Salem, meaning “king of peace,”
3. without father, without mother, without genealogy, having neither beginning of days nor end of life, but made like the Son of God, remains a priest continually.

멜기세덱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7:1-3. 우리가 아는 멜기세덱(창 14:18-20)

1. 살렘 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해 주었다. 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멜기세덱의 뜻은 첫째로 "정의의 왕"이고, 그 다음 "평화의 왕"이란 뜻의 살렘의 왕이란 뜻이다. 3.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고, 하나님의 아들처럼 되어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이다. 

"그는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해 주었다" (1절).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을 사로잡은 왕들의 연합을 물리친 뒤에, 그는 멜기세덱이라는 신비한 제사장을 만났다. 그는 살렘 성(예루살렘 성의 옛 이름)을 다스리고 있던 왕이기도 했다. 역사는 종교적 권위와 시민적 권위를 결합하는 것의 위험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제사장이 되고, 제사장이 왕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살렘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은 예외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은 단지 진정한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멜기세덱의 사제직의 위대함을 극대화시켰다.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해 주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 (창 14:20).

"멜기세덱의 뜻은 첫째로 "정의의 왕"이고, 그 다음 "평화의 왕"이란 뜻의 살렘의 왕이란 뜻이다" (2절).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을 의미하며, 그는 또한 "평화의 왕"(살렘이라는 이름이 '평화'를 의미)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3절). 그는 '아버지나 어머니도 없고, 인생의 시작도 끝도 없고, 또 하나님의 아들처럼 되어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말은 그가 예수님의 생전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천상의 존재 - 즉, 예수님의 모형이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처럼 되어서: f. 3절의 이 표현은 직역하면 '하나님의 아들처럼 만들어졌다(made)'로 번역합니다. 그리스어(aphomoiomenos)는 신약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단어라고 합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이것은 '팩스 복사본 또는 모델'의 능동적 표현과 '비슷하게 만들어짐'의 수동적 표현에 사용되는 암시적인 단어입니다." (Guthrie)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붕어빵 틀에 찍어서 멜기세덱과 같거나 비슷하게 만들어진 붕어빵과 같다는 말입니다. 둘 중 누가 오리지널 붕어빵인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예수님이 한참 후대이시지만, 예수님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그가 실제로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였을까요? 멜기세덱에 대한 글은 성경 전체에서 히브리서가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의 설명으로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제직은 오늘까지, 그리고 영원히 남아있지만, 멜기세덱의 사제직은 어떨까요?


4. Now consider how great this man was, to whom even the patriarch Abraham gave a tenth of the spoils.
5. And indeed those who are of the sons of Levi, who receive the priesthood, have a commandment to receive tithes from the people according to the law, that is, from their brethren, though they have come from the loins of Abraham;
6. but he whose genealogy is not derived from them received tithes from Abraham and blessed him who had the promises.
7. Now beyond all contradiction the lesser is blessed by the better.
8. Here mortal men receive tithes, but there he receives them, of whom it is witnessed that he lives.
9. Even Levi, who receives tithes, paid tithes through Abraham, so to speak,
10. for he was still in the loins of his father when Melchizedek met him.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히브리서 7:4-10. 아브라함보다 위대한 멜기세덱

4.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하였는지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다.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백성들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는다는 계명이 있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그들의 형제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았다. 6.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은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았고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다.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의 축복을 받는 법이다. 8. 여기는 죽을 사람들이 십분의 일을 받지만, 저기는 산다고 증언을 받은 사람이 십분의 일을 받았다. 9. 십분의 일을 받은 레위도 말하자면 아브라함을 통해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이다.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몸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도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율법에 따라 백성들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는다는 계명이 있었다" (4-5절). 율법으로 레위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은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습니다. 바로 제사장 직분을 세운 모세가 그에게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주었기 때문에,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십일조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십분의 일을 받은 레위도 말하자면 아브라함을 통해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이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몸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9-10절).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을 때 유전적으로 전체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에(아직 태어나지 않음), 우리는 구약성서 제사장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십분의 일을 지불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레위를 다스리는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여기에서 '말하자면(so to speak)'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자신이 우화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의 진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 사건을 진술하는 것이 히브리서가 대부분이라, 이 중요한 것이 '사실(fact)'인지 아니면 '가설(fiction)'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히 7:7)

"낮은 자가 높은 자의 축복을 받는 법이다" (7절). 이 원칙은 현대에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기 때문에 그가 아브라함보다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도 멜기세덱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 7:3, 이미지 소스: https://aclayjar.net/)

어떤 평론가는 성경의 이 부분을 그냥 스킵하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이 구절을 삽입한 이유는 예수를 거부하려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이신지, 왜 그분이 필요한지 (스킵할 수 없는지)를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설과 같은 인물 멜기세덱에 대한 저자의 진술을 듣습니다. 그가 역사적 사실의 인물인지 우화적으로 비유된 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은 진실만 나열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팩트, Fact)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저자가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증거로 내세워서 그를 그 누구보다 위대한 인물로 부각합니다. 그 이유는 문제의 히브리인들(본 서신을 받는 사람)이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적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레위 지파나 아론의 후손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한 우리의 대제사장임을 멜기세덱이라는 전설적 인물을 구약에서 찾아내어 그를 통해 예수님의 위대함을 저자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6/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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