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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히브리서(Hebrews)10:26-39(고난 중 인내를 기억하라)

by 미류맘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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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을 의도적으로 거부할 경우 그에 대한 무서운 심판을 저자는 경고합니다. 그리고 고난 중 큰 싸움을 견디어 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했는지 상기하고, 미래를 위해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으라고 권면합니다.

 

26. For if we sin willfully after we have received the knowledge of the truth, there no longer remains a sacrifice for sins,
27. but a certain fearful expectation of judgment, and fiery indignation which will devour the adversaries.
28. Anyone who has rejected Moses’ law dies without mercy on the testimony of two or three witnesses.
29. Of how much worse punishment, do you suppose, will he be thought worthy who has trampled the Son of God underfoot, counted the blood of the covenant by which he was sanctified a common thing, and insulted the Spirit of grace?
30. For we know Him who said, “Vengeance is Mine, I will repay,” says the Lord. And again, “The LORD will judge His people.”
31. It is a fearful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브리서 10:26-31.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을 의도적으로 거부할 경우

26.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다시는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제사는 없습니다. 27. 어떤 두려운 심판을 기다림고 대적하는 적들을 집어삼킬 불같은 분노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28. 모세의 율법을 거역한 사람도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9.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은 사람들이 받을 벌은 얼마나 가혹하겠습니까? 그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언약의 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30. "복수는 내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하신 주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26a절).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10장 29절에서 정의된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언약의 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한 예수의 위대한 업적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을 말한다.

  • 어떤 의미에서, 모든 죄는 "의도적인 죄"이다. 그러나 여기서 저자는 낙담한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훨씬 더 심각하고 적절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차별적인 기독교로부터의 돌아서서 희생적 체계를 가진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했고, 이것은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 "이것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미끄러지는 사람들(backsliders)' 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복음을 저버리지도 않고 자신을 사신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그의 경우는 음울하고 위험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Clarke)
  • "이 생각은 앞 구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동료 기독교인들을 저버리면 그리스도도 버리게 되기 쉽다는 것을 암시한다." (Thomas)

"다시는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제사는 없습니다" (26b절). 저자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예수의 희생을 거부한다면, 깨끗히 할 수 있는 다른 제사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받을 벌은 얼마나 가혹하겠습니까?" (29절).

"만약 이 위대한 구원의 방법,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 희생이 거부된다면, 남아 있는 다른 희생은 없습니다." (Morgan) 

새 언약 아래에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죄사함을 거부한 이들은 옛 언약 아래에서 하였던 동물 희생제사를 통해서 깨끗함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선포된 새 언약이 이미 옛 언약을 폐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학자는 다음과 같은 죄를 우리가 범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짓밟고, 평가절하하고, 욕되게 한다'는 강한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저자는 기독교를 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분노의 감정을 전달한다.
  • 언약의 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우리는 옛 언약에 따라 희생된 수많은 동물들보다 예수의 피를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피가 보통 사람의 피보다 더 신성한 성격이나 특별한 가치가 없는 일반적인 것이고, (2) 그리스도의 피를 속죄자와 구원자의 피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 그의 피가 죄인의 피와 같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Vincent)
  •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성령의 목적은 예수님과 그분의 완성된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 16:8-15).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이 완성하신 일을 우리가 거부한다면, 우리는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은 사람들이 받을 벌은 얼마나 가혹하겠습니까? 그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언약의 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히 10:29)

복수(vengence): 한 학자는 그리스어 원본에 '보복(vindictiveness)'이란 개념을 전달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복수'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같은 말로 들리지만 뉴앙스가 다른 듯한 '복수'와 '보복'의 차이를 찾아보니, '복수'는 상대방에게 감정을 품고 원수를 갚는다는 뜻이고, 보복은 상대방이 나에게 준 피해만큼 나도 상대에게 보복하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네가 성령을 욕되게 하였으니 그만큼 너에게 보복하겠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품을 수 있는 감정은 '보복'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31절). 여러분이 거부하고 그 성령을 욕되게 한 하나님을 어느 날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그분의 사랑에 저항하고, 구원을 거부하고, 성령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결같이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는 한계를 지났다." (Newell)


32. But recall the former days in which, after you were illuminated, you endured a great struggle with sufferings:
33. partly while you were made a spectacle both by reproaches and tribulations, and partly while you became companions of those who were so treated;
34. for you had compassion on me in my chains, and joyfully accepted the plundering of your goods, knowing that you have a better and an enduring possession for yourselves in heaven.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서 10:32-34. 고난 중 큰 싸움을 견디어 냈을 때

32. 여러분이 빛을 받은 후 고통과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이전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33. 여러분은 비난과 환난으로 인해 구경거리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34. 여러분은 내가 사슬에 매었을 때 나를 불쌍히 여기며, 여러분의 소유를 노략질당하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천국에 더 좋고 영원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통과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이전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32절). 이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거절당해, 이미 예수를 위해 고통받았고 아마 죽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박해와 투쟁하였고, 비난과 환난으로 인해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그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히브리서의 저자도 있었다 (내가 사슬에 매었을 때 나를 불쌍히 여기며). 그들은 경제적 박해에도 직면했다(여러분의 소유를 노략질당하는 것).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것들을 마주했고 견뎌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인내력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도 계속 굳게 서 있도록 격려받을 것이다.

"이는 천국에 더 좋고 영원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34절). 그들은 천국을 생각하고 박해의 시대를 헤쳐 나갔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은 현재의 낙담 또한 헤쳐나갈 수 있다."


35. Therefore do not cast away your confidence, which has great reward.
36. For you have need of endurance, so that after you have done the will of God, you may receive the promise:

“For yet a little while,
And He who is coming will come and will not tarry.
Now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But if anyone draws back,
My soul has no pleasure in him.”

But we are not of those who draw back to perdition, but of those who believe to the saving of the soul.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 10:35-39. 과거의 경험에 의지하여 미래를 견딜 힘을 얻으라

35. 그러므로 여러분은 큰 보상이 있는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36. 여러분에게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다한 뒤에, 그 약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7-38.

"아주 잠시 후면,
오실 분이 오실 것이니 지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을
내 영혼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39.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함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큰 보상이 있는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히 10:35, 이미지 소스: ttps://www.bible.com/)

"그러므로 여러분은 큰 보상이 있는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35절). 저자는 예수님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옛 언약 관계로 다시 돌아갈 위험에 처해 있는 낙담한 기독교인들에게 권면합니다. 클라크는 말합니다: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사람도 악마도 여러분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계속해서 신실하면 하나님은 결코 신념을 빼앗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기에 자신의 방패를 버리고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병사들을 언급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방패요, 너희에게 구원의 지식을 주는 그리스도에 대한 너희의 믿음이니, 그것을 지키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를 지킬 것이다.'" (Clarke)

여기에서 클라크는 '주님에 대한 신념(confidence, 자신감)'을 전쟁터에서 병사의 방패에 비유합니다. 싸우러 나간 전쟁터에서 자신의 방패를 버리고 도망치는 비겁한 병사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싸움터에서 승리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싸우는 병사처럼, 우리도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신념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하고 이겨야 한다고 그는 권면합니다. 

"여러분에게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36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다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인내심이다. 가장 힘들고 낙담스러운 시련은 하나님의 약속 이행이 너무 멀어 보일 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우리가 부름을 받을 때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인내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 동안의 신실함은 여러분의 순종과 영적 성숙의 척도이다. 야고보는 시험(믿음의 시련)을 통해 인내심이 생긴다고 말한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야 1:2-4)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38절).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갈 의인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고, 그 약속이 이행되는 것을 보려고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함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39절). 이것은 자신 있는 결론이다. 우리는 인내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얻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옛 전통이나 하나님과의 옛 언약 관계, 또는 예수님을 대신할 그 어떤 다른 것으로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생활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은 때로는 실망, 우울함, 또는 낙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항상 불신 때문이다." (Thomas)

학자는 '뒤로 물러나는 것'은 '미끄러지는 것'과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뒤로 물러나는 것을 반복하면 미끄러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뒤로 물러나고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반복합니다. 뒤로 물러남이 없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신념(자신감)에 기반하여, 흔들리지 않고 담대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신념, 담대함, 인내심을 가지고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10/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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