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성경묵상

히브리서(Hebrews)11:1-12(믿음의 선조들 1)

by 미류맘 2022. 7. 19.
728x90

저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주는 '믿음'을 정의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시작에서 믿음의 예를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예증하면서 그들의 믿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을 설명합니다.

 

1.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2.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testimony.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fram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the things which are seen were not made of things which are visible.

믿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준다

1. 믿음은 바라던 것들의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믿음으로 옛 사람들도 좋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3.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라던 것들의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1절). 우리의 물리적 시력이 물질 세계의 증거를 주는 감각인 것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증거를 주는 '감각'이다.

믿음은 바라던 것들의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 11:1, 이미지 소스: https://agfaithchapel.org/)

 믿음은 바라던 것들의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 11:1)

학자는 믿음을 우리의 오감과 같은'감각'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눈으로 물질세계를 인지하듯, 영적인 눈으로 영적인 믿음의 세계를 인지한다는 뜻입니다. 계속 설명합니다.

  • 믿음에는 이유가 있다. 성경은 믿음의 "맹목적인 도약"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실험실에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며,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육체적인 시력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나 증거를 만든다. 그러나 믿음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질서를 볼 수 있게 하는 기관이다." (Bruce)

눈 앞에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저자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믿음은 성경에도 적용됩니다. (논리가 아닌) 오직 믿음만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신앙(faith)은 단순한 믿음(belief)이나 지적인 이해가 아니다. 믿고 의지하고 매달리는 의지가 신앙이다."

신앙과 믿음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믿음(확신, 신념)'입니다. 그러나 논리를 넘어선 실체(substance)를 믿는 것은 영적인 믿음, 곧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옛 사람들도 좋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2절).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낙담했고 예수님과 기독교를 포기할 생각을 했다. 그들은 좋은 증거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낙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러한 믿음의 본보기가 필요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이해합니다" (3a절). 하나님이 단순히 "빛이 있게 하라"(창 1:3)고 명령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시편 시인은 기록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은 만들어졌고, 그 만상이 그의 입 기운으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니 견고히 섰다." (시 33:6, 33:9)

우리는 이런 창조 행위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안다. 또한 우리는 이것을 이성(reason)으로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창조되었고 지적인 디자이너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이성을 넘은 신앙이지만, 이성에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성과 상반되는 믿음을 기대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은 자궁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성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생명과 자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수 있고, 약속대로 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이해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믿음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적인 의미의 '신앙'은 하나님께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을 바라던 것의 실체,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로 이해한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3b절). 히브리서가 쓰여진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에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물질로부터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오해를 바로잡고,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4. By faith Abel offered to God a more excellent sacrifice than Cain, through which he obtained witness that he was righteous, God testifying of his gifts; and through it he being dead still speaks.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4. 가인과 아벨의 차이점: 믿음

4.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를 통해 아벨은 의인이라고 증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증언하시고, 아벨은 죽었지만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4절). 창세기에서 가인과 아벨은 같은 희생제사를 드렸는데, 차이점은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창 4:3-5). 그리고 하나님은 아델의 제사를 기뻐하셔서 그의 예물을 증언하셨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4b절). 아벨은 가인에 의해 죽었지만, 저자는 아벨을 예로 들면서 믿음은 반드시 지상에서 보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의 의로움을 증언하신다. 아벨의 피는 지금도 우리에게 영원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5. By faith Enoch was taken away so that he did not see death, “and was not found, because God had taken him”; for before he was taken he had this testimony, that he pleased God.
6. But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h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os5 who diligently seek Him.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5-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5. 믿음으로 에녹은 하늘로 옮겨져서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늘로 옮겨지기 전에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증거를 받았습니다. 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로 오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늘로 옮겨져서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5절). 에녹은 구약성서의 수수께끼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기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 (창 5:24).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6절). 이것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믿음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을 믿고,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며 구하는 마음에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학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상당히 단순한 원리를 설명합니다. (1)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2)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어야 (1)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2) 자신을 드러내시고, (3) 상을 주시는 분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7. By faith Noah, being divinely warned of things not yet seen, moved with godly fear, prepared an ark for the saving of his household, by which he condemned the world and became heir of the righteousness which is according to faith.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히브리서 11:7. 노아의 행동하는 믿음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경건한 두려운 마음으로 그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로움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7a절). 노아는 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 그의 믿음은 단순히 홍수가 올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홍수에 대해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것을 행하는 것에서 나타났다.

"경건한 두려운 마음으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7b절).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의로움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8. By faith Abraham obeyed when he was called to go out to the place which he would receive as an inheritance. And he went out, not knowing where he was going.
9. By faith he dwelt in the land of promise as in a foreign country, dwelling in tents with Isaac and Jacob, th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10. for he waited for the city which has foundations, whose builder and maker is God.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브리서 11:8-10.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가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가라는 부름을 받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떠났습니다. 9. 믿음으로 그는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살았습니다. 같은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10.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세우신 튼튼한 기초가 있는 성읍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순종하였습니다" (8절).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나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으로 갔으나, 그의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이는 창세기 12장 1-5절을 사도행전 7장 2-4절과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는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처음에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까지 반쯤 갔다가 결국 완전히 순종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천 년 후, 하나님은 지연된 복종을 "기억"하지 않으셨고, 오직 믿음만 기억하셨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에 살았습니다" (9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나그네(거주자, 체류자, sojourner)'으로 살았으며, 그와 사라가 묻힌 땅 외에는 그 땅의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어 'paroikos(sojourner)' 드웰트는 '거주하는 외국인(resident alien)'으로 번역하는데, 그 의미는 특정한 곳에 거주는 하지만 영원히 정착하지 않은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나그네'로 번역했습니다. 단어 선택에 멘트가 많은데, 원주민, 거주 외국인, 체류자, 영주권자 등.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서 원주민도 영주권자도 아닌 영원한 집이 없는 그저 나그네로 사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과 함께 집이 아닌 장막에서 살았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같은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9b절).

그리고, 그들은 지상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더 좋은 도시,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세우신 튼튼한 기초가 있는 성읍을 기다렸습니다.


11. By faith Sarah herself also received strength to conceive seed, and she bore a child when she was past the age, because she judged Him faithful who had promised.
12. Therefore from one man, and him as good as dead, were born as many as the stars of the sky in multitude; innumerable as the sand which is by the seashore.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11-12. 사라의 믿음과 그 결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씨앗을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그 아이를 낳을 나이도 지나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는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2. 이러므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많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은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믿음으로 사라는" (11a절). 사라의 믿음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에 믿지 못하면서 웃었고(창 18:9-15), 나중에 그녀는 믿음으로 웃는 것을 배웠다(창 21:6).

사라는 늙어서 하나님이 그녀의 태를 닫으셨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0)하셨을 때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창 18:12). 그러나 아브라함이 백 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사라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 21:6)

"이는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1b절). 믿음은 하나님이 신실하고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으로 귀결된다. 사라가 씨앗을 잉태할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지만 사라는 믿음으로 받았다.

하늘의 별처럼 많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은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사라와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수천에서 수백만 명의 후손들이 태어났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이 꿈꿔왔던 것보다 더 많은 삶에 영향을 미쳤다.

어제 방황하고 고민에 빠져 잠 못드는 자퇴한 고2 제 딸에게 잠자리에서 말했습니다. "미류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해.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믿을 수 있어. 그러나 보이지 않는 너 자신을 보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아야 해. 니가 세상에서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아?" 믿음이 없고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는 저희 딸에게 보이지 않는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실체가 없어 보이는 이 '허상과 같은 실체'를 붙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11/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