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성경묵상

레위기 23장: 하나님 절기의 예언적 의미

by 미류맘 2022. 8. 10.
728x90

레위기 23장을 끝내면서 하나님의 절기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자료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다양한 자료들이 많은데 (이단과 관계있는 것 같은) 위험한 내용도 보였습니다. enduringword로 23장을 공부하다 보니 끝 부분에 '하나님 절기의 예언적 의미'를 별도로 정리된 부분이 있어서 번역 및 편집해서 올리고, 다른 자료들을 나름대로 취합하여 정리합니다.

"여호와의 7절기" 이미지 소스: http://appleeye.org/

1. 여호와의 절기들: 봄 절기들과 오순절 

이스라엘의 달력에는 4개의 봄절기가 함께 묶였고(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및 오순절: 위의 표에서 우측 부분), 3개의 가을절기도 함께 묶여 있습니다(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위의 표에서 좌측 부분). 이 두 그룹의 절기들 사이에는 거의 4달 정도의 시간적 차이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절기는 원래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으나, 위 표의 우측 4개의 절기들은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즉, 유월절(죽음), 무교절(매장), 초실절(부활), 오순절인데, 예수의 첫 번째 오심(임재: 臨在)를 가리키는 네 개 절기 각각이 절기의 정확한 날 그 예언적인 성취를 보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 유월절은 우리의 죄로 희생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요 19:14). 아마도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나눈 식사(마 26:17-19)를 유월절 식사 - 즉 최후의 만찬으로 여기지만, 실제 유월절 전날 먹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 출애굽 전날 밤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장자들을 죽일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넘어가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넘어갈 것입니다.

    •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 5:7)

  • 무교절에는 예수의 시신이 묻혔고, 무교절 절기 중에 그의 거룩하고 순수한 희생이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되어, 우리의 구원을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지킨 무교절이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라면, 신약시대의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절기입니다.

  • 초실절(첫 열매)은 부활하여 다시는 죽지 않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 첫 열매 축제(초실절)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골 1:18)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다." (고전 15:20, 23)
  • 오순절은 교회의 탄생(행 2:1)과 영혼의 수확을 가리킵니다. 오순절 의식에서 누룩을 넣은 빵 두 덩어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로 흔들렸는데, 이는 "누룩을 넣은"(죄가 있는) 이방인들을 교회로 인도한 것에 대해 말합니다. '누룩을 넣은 빵 두 덩어리' 이야기는 이 글의 후반부에 계속됩니다.

2. 여호와의 절기들: 가을 절기들 

마지막 세 번의 절기 중 두 번째 그룹은 예수의 두 번째 오심과 관련된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오시는 것(the second coming)을 재림(再臨)이라고 부릅니다.

  • 나팔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궁극적인 거룩한 회합 – '교회의 환희'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을 모으신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살전 4:16-17)

    • '교회의 환희(the rapture of the church)'의 'rapture'의 뜻을 찾으려고 검색해 보았습니다. 유대인의 절기인 나팔절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모으십니다. 이 행사는 위에 인용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기술되어 있으며, 흔히 '교회의 환희'라고 부릅니다. 

      어원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교회의 휴거(?)'라는 처음 듣는 말이 나오는데,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에 연관된 것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휴거"는 '교회와 성도들을 강제로 끌고 올라간다'라고 교리를 설명하는데, 휴거의 한자도 찾을 수 없고... 여호와 증인, 신천지, 몰몬교, 문선명의 통일교 등(접근하면 안 되는 개신교들)이 검색됩니다. 일부 개신교에서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신자들이 '들여 올림'을 받아 육체적인 죽음이 없는 불멸의 상태로 변형된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개신교의 이상한 교리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말씀 그대로 이해해야지 억지 해석으로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내는 일부 개신교의 교리에 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 속죄일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드린 궁극적이고 온전한 속죄일 뿐만 아니라, 큰 환난 중 이스라엘이 보게 될 고난과 구원도 가리킵니다.
    • 이스라엘 영혼이 고난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서이다. 예레미야 30장 7절은 그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슬프다!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이나, 그가 환난에서 구원받을 것이다." (렘 30:7)
  • 초막절은 이스라엘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천년의 휴식과 위안을 가리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절기는 모두 평화와 안식에 관한 것입니다.

3. '빵(곡식제물) 두 개'의 의미는?

이 글을 포스팅하려고 생각한 계기는 하나님의 절기 중 '오순절(칠칠절)'에 대해 명령하는 아래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왜 '누룩을 넣은 빵'을 가져오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왜 두 개일까?

"너희는 너희 거처에서 십 분의 이 에바로 만든 흔들어 바칠 빵 두 개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고운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구운 것이어야 한다. 그것들이 여호와께 바치는 첫 열매이다." (레 23:17) 

한 학자는 말합니다: "오순절은 누룩을 넣은 빵에서 죄없는 온전함에 도달하지 못한 교회를 말한다. 유월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에서 예수와 그의 죄 없음을 말한다." 

누룩을 넣은 빵과 넣지 않은 빵(이미지 소스: http://pastoralmeanderings.blogspot.com/)

그것이 비유라면 어떤 비유일까? 신약성경의 일부 비유는 예수님이 해석을 제자들에게 내리시기 때문에 우리는 비유와 해석을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누룩을 넣은 빵' - 여기에서 2개는 상반된 것일지 비슷한 것일지? 한 학자는 비슷한 성격의 경우,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공통된 증언이나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같은 우정을 예로 듭니다(불완전한 조화). 그러나 반대나 적대적인 성격의 경우, 하나님과 사탄,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의 경우와 같이 분쟁이 뒤따릅니다. 

이미지 소스: https://www.fontanacommunitychurch.org/

제사장은  '두 개의 누룩을 넣은 빵'을 굽는데, 성경에서 누룩은 '부패와 죄'를 상징하고 빵은 '육체'를 상징합니다. 제사장은 두 개의 다른 발효된(죄로 얼룩진) 물체(육신)를 거룩한 하나님께 바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육체를 상징하는 "빵의 제물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의 의문점이 생깁니다. 곡식제물은 번제물과 함께 바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의미를 David C. Grabbe는 설명합니다:

"이 빵들은 곡식제물이고(레 23:16), 곡식제물은 번제와 함께 바치게 되어 있었다. 번제의 주된 가르침은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는 헌신이다. 그리고 번제물은 제단 위에서 완전히 불로 태워지고 바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번제물은 처음 네 가지 계명, 즉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담고 있다.

반면 곡식제물은 땅의 열매에 대한 노력의 결실(인간의 노동)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제물의 일부분만 태우고 대부분은 인간의 이익(제사장의 몫)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바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은 마지막 여섯 가지 계명, 즉 '이웃 사랑'을 담고 있다. 오순절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아낌없는 헌신을 강조한다."

이 학자의 설명을 읽으면 곡식제물을 바친 오순절은 십계명의 마지막 여럿 가지 계명인 '이웃사랑'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유대인인 보아스가 이방인인 을 위해 이삭을 남기듯 말이지요. 결국 보아스와 룻은 결합하여 하나님 앞에서 한 가정을 이룹니다.


4. 왜 '두 개의 빵'을 드리는가?

구약에서 지성소 앞의 떡상 위에는 6개씩 두 줄로 12 덩어리의 무교병을 올렸습니다. 레위기 23장에서는 두 개의 빵을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한 학자는 숫자 '2'는 증인의 숫자이기도 하고 단합의 숫자이기도 하다고 설명합니다:

  • '둘'은 증인의 숫자
    •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에 대한 증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 유대인(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둘 다 하나님의 증인이다.
    •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의 증인이다.
  • '둘'은 단합의 숫자
    • 하나님이 보시기에 각 신자의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신자들은 하나이다.
    • 언어, 문화, 계급, 교육 등에 기반하여 우리 사이에 편견이 없다.

5. 왜 '누룩'을 넣은 빵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소제(grain offering)를 드릴 때 누룩을 넣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레 2:11). 그러나 오순절에는 '누룩을 넣어 구운 빵 두 덩어리'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알다시피 성경에서 누룩(이스트, 효모)은 악과 죄의 그림입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소제는 죄가 없는 그리스도의 그림입니다. 그러나 누룩이 있는 것은 신자 (또는 교회)의 그림입니다. 따라서 누룩을 넣은 빵'은 우리들 신자(교회)가 완전히 누룩(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안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요일 1:8, 10)

누룩이 반죽에 첨가되면 누룩이 바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반죽이 부풀어 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내재된 죄악은 오염되어 우리의 자만심과 오만을 부풀게 합니다. 자만심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리는 죄악으로 빠집니다. 그 죄악이 잡히지 않으면 우리는 죄악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잡히고, 너무 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빵이 누룩을 넣고 '구워졌다'는 것은 우리 안에 아직 남아있는 오래된 천성과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죄악이 잡히지도 않았는데 구워졌다면, 그 죄악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기록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갈 5:24)
  •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2)

성경은 육체와 함께 그 죄악(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합니다. '두 덩어리의 누룩 넣은 빵'에서 육체는 빵이고, 죄악(정욕, 탐심)은 누룩입니다. 누룩을 넣은 빵 두 개에 대한 하나님의 수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온전한 희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두 빵에서 발견되는 누룩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원초적 죄악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했을 때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실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6. 두 덩어리의 빵: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초실절에서 제사장은 이삭단을 흔들어야 했습니다 (레 23:11), 그러나 오순절에는 누룩을 넣은 두 덩어리의 빵을 흔들어야 합니다 (레 23:17). 우리는 우리에게 죄(원죄)가 있지만,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소중한 손안에 있는 것을 감사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4-5)

이집트 땅에서 요셉이 그의 형들을 만났을 때 그는 그들에게 키스하고 껴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왜일까요?

형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노예로 팔아 넘겼는데, 극적으로 형들을 만난 요셉은 형들의 죄악을 확인하고, 용서하고, 입맞춤으로 화해와 사랑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흔드는 두 덩어리의 빵이었습니다. 두 덩어리의 빵은 여러 의미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도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누룩 넣은 빵 두 덩어리'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을 명령하십니다:

  1. 십계명 중 앞의 네 가지 계명인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2. 십계명 중 뒤의 여섯가지 계명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네 형제끼리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라 (위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처럼 같이 섞이고 어울리리 못해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두 개의 빵(육신을 가진 사람)은 죄로 오염되었고 하나님 말씀으로만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흔드는 누룩을 넣어 구운 두 덩어리의 빵"을 의미를 찾으려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제대로 정리는 못하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많이 헤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이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때문이 아니라 누구에게 속했는지 때문에 우리를 받아들이신다. 
우리는 그에게 속해 있고 그의 손 안에 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leviticus-23/
https://www.cgg.org/index.cfm/library/weekly/id/1050/pentecosts-two-leavened-loaves-part-one.htm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ES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