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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전도서(Ecclesiastes)4:1-6(위로없는 학대의 슬픔)

by 미류맘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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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힘 있는 자들의 학대를 보고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음을 한탄합니다. 이러한 부당함을 보고 그는 오히려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더 낫고, 성공은 종종 시기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헛되다! 말합니다.

 

1. Then I returned and considered all the oppression that is done under the sun:
And look! The tears of the oppressed,
But they have no comforter—
On the side of their oppressors there is power,
But they have no comforter.

학대, 수고 , 동무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도서 4:1. 해 아래의 위로 없는 학대

(개인번역) 1. 그리고 나서 나는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학대에 대해 생각했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다. 그들에게는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에게 힘이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나는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학대에 대해 생각했다 (1a절): 솔로몬은 앞에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온갖 불의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삶은 오늘을 잘 사는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는 생각이 많습니다. 다시 세상의 모든 억압(학대)을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학대에 대한 생각에 대하 학자는 말합니다:

"학대받는 자에 대한 연민은 구약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Eaton):

  • 왕에 의한 백성의 학대 (잠 28:16)
  • 주인에 의한 종의 학대 (신 24:14).
  • 부유한 사람들에 의한 가난한 사람들의 학대 (잠 22:16)
  • 관료에 의한 가난한 사람들의 학대 (전 5:8)
  •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 의한 가난한 사람들의 학대 (잠 28:3)
  •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학대 (렘 7:6, 겔 21:7, 슥 7:10)
  • 높은 이자를 부과하는 학대 (겔 22:12, 29)
  • 거짓 저울을 이용하는 학대 (호 12:7)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다. 그들에게는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1a절): 억울하게 학대와 억압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고 마찬가지입니다. 권세 있고 힘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억압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한탄합니다: "그들에게는 위로와 위로자가 없다!"


2. Therefore I praised the dead who were already dead,
More than the living who are still alive.
3. Yet, better than both is he who has never existed,
Who has not seen the evil work that is done under the sun.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전도서 4:2-3. 학대 받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개인번역) 2.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있는 자들보다 이미 죽은 자들이 더 복되다고 하였다. 3. 그러나 이 둘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아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 자가 더 복되도다! 

그래서 나는... 이미 죽은 자들이 더 복되다고 하였다 (2절): 학대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전도자는 살아있는 그들보다 오히려 죽은 자들이 (아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 더 복되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그러한 학대와 악을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솔로몬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성경학자는 설명합니다:

솔로몬이 죽은 자를 이렇게 복되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당시에 다가올 세상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전도서를 해 아래에서 전제로 썼기 때문이다. 불의의 죽음에 일어난 일을 알고 받아들였다면 그는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죽은 자들: 영어 번역으로 직역하면 "이미 죽은 죽은 자들(the dead who were already dead)"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문법적으로 말이 안되는 시제들이 많습니다. 그 말은 "아직 살아있는 죽은 자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지만 영혼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이 둘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아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 자가 더 복되도다 (3절): 솔로몬이 생각하는 복된 사람의 순위는 '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2. 이미 죽은 사람들, 3.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현재로 생각하면 솔로몬은 2번(중간), 우리는 3번(최악)에 속합니다. 솔로몬의 눈에 우리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의 재치 있는 생각은 사실 매우 슬픈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자는 유다를 언급하면서 하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 사람(가룟 유다)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신에게 좋았을 것이다" (마 26:24)

그러나, 우리도 "넌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을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절망스러울 것입니다. 학자는 또 말합니다.

아래 전제에서 억압의 부당함에 대한 설교자의 큰 절망은 사후세계와 다가오는 심판의 도덕적 필요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실족하게 하는 일들 때문에 이 세상에 화가 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마 18:6-7)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무고한 사람을 죄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권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사람은 처벌의 대상이 되고 그에게 저주가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이 실족하는 일은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자성어에도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선한 일을 해도 실족할 수 있다면, 솔로몬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억압의 부당함에 대한 생각은 해 아래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주제로 보입니다.


4. Again, I saw that for all toil and every skillful work a man is envied by his neighbor. This also is vanity and grasping for the wind.

The fool folds his hands
And consumes his own flesh.
Better a handful with quietness
Than both hands full, together with toil and grasping for the wind.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전도서 4:4-6. 성공은 때로 이웃의 시기를 받는다!

(개인번역) 4. 내가 다시 보니, 사람의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이웃의 시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도 헛되어서 바람을 잡는 것이다. 5. 어리석은 자는 팔짱을 끼고 자신의 몸만 축내지만, 6. 두 손에 수고와 바람을 잡는 것으로 가득한 것보다 낫도다! 

사람의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이웃의 시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도 헛되어서 바람을 잡는 것이다 (전 4:4, 이미지 소스: https://dailyverses.net/)

사람의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이웃의 시기를 받는다 (4절): 솔로몬은 수고숙련된 일로 성공을 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주위의 질투와 때로는 증오를 가져왔음을 상기하고 이 또한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고한 사람은 세상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살았지만 그것이 질투와 비방의 대상이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는 팔짱을 끼고 자신의 몸만 축내지만 (5절): 질투를 하는 사람을 게으른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몸만 축낸다고 비난합니다. 영어로 'consume'이란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서 몸과 에너지를 더 써 버리는(소진하는) 비경제적인 (그래도) 활동입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스스로를 파괴한다, 또는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온다' (Deane). 

두 손에 수고와 바람을 잡는 것으로 가득한 것보다 낫도다! (6절): 전도자는 자신의 달란트를 수고로 소진하면서 만족없는 삶을 사느니, 오히려 어리석은 자처럼 팔짱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막말로 "적게 먹고 덜 싼다!" 솔로몬이 다루는 해 아래의 삶은 독특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로 학자는 말합니다:

  • 근면과 성공은 좋지만 질투의 대상은 아니다.
  • 게으름은 잘못이며 파괴적이다.
  • 그러나 두 손이 가득한 사람도 만족감을 배워야 한다. 

두 손에 수고와 바람을 잡는 것으로 가득한 것보다 낫도다 (전 4:6, 이미지 소스:https://fruitfultoday.com/)

NIV 버전: "두 손에 수고와 바람을 잡는 것으로 가득한 것보다 한 손에 있는 고요함이 낫다."

솔로몬은 우리가 살면서 "이건 불공평하다, 뭔가가 이상하다!"하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어쩌면 이렇게 맛갈나게 뽑아내고 지적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단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객관적인 해 아래에서의 시각으로 말이지요.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ecclesiastes-4/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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