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성경묵상

마태복음(Matthew)5:1-12(산상수훈의 시작: 八福)

by 미류맘 2023. 1. 24.
728x90

산상수훈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 가르침을 준비하시고 산상수훈의 시작인 팔복을 말씀하십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원칙이고 그들이 누려야 하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1. 가르침을 준비하시는 예수님

1. And seeing the multitudes, He went up on a mountain, and when He was seated His disciples came to Him.

복이 있는 사람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개인번역)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1a절): 앞절에서 예수께서 가르침을 전파하시고 질병을 치유하실 때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고 언급했습니다 (25절). 예수는 그 무리를 피해서 산으로 올라가 앉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의 무리가 그 주위로 모입니다. 학자는 성경을 인용하면서 두 종류의 무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 누가는 산상수훈의 팔복에 대해 기록할 때, 두 종류의 무리를 언급합니다: " 제자의 무리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에서 온 많은 백성의 무리" (눅 6:17). 그러나,

  • 가르침을 시작하실 때,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그의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눅 6:20)

그 말은 산상수훈의 팔복이 백성의 무리가 아닌 좁은 의미의 예수의 제자들에게 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12제자이고, 또 하나는 그보다 큰 집단인데 성경에서는 후자 또한 무리로 말합니다. 성경은 후자에대해서 하나의 그룹으로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하는 제자들이란 12명의 제자들보다 큰 집단인 '제자들의 무리'로 학자들은 이해합니다.

이 무리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이 모든 (예수 시대의 이방인도 포함한) 무리가 대상인지, 아니면 제자들의 무리를 대상으로 하신 것인지를 아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원칙을 제시하는 설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미지 소스: https://www.theologyofwork.org/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1b절): 당시 문화에서 선생은 앉아서 가르쳤고(위의 그림처럼), 듣는 사람들은 서서 듣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2. 예수께서 가르치기 시작하시다

2. Then He opened His mouth and taught them, saying: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개인번역) 2. 예수께서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치셨다.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치셨다 (2절): 예수님은 입을 열어 이 위대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산상보훈(寶訓), 또는 산상설교(說敎)로도 알려져 있으며,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ABC를 알려주십니다. 학자의 설명입니다:

산상설교는 종종 예수의 "왕국의 선언"으로 여겨진다. 미국 혁명가들은 그들의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있었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이 무엇인지 선언하셨다.


팔복(八福): 축복의 의미는?

이미지 소스: https://godcenteredlife.org/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축복(blessing)은 고대 그리스 단어로 '행복한(happy)'의 의미를 가지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편안하거나 즐거운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의미를 학자는 설명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행복하다"의 의미인 "복이 있다"는 하나님에게 적용된다: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따라서 (딤전 1:11)". "마카리오스는 이 기쁨을 그 안에 비밀이 있는 기쁨, 고요하고 만질 수 없는 기쁨, 그리고 자족적인 기쁨, 삶의 모든 기회와 변화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쁨을 묘사한다." (Barclay)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심판의 날에 그의 백성들에게 "내 아버지께 축복받은 너희들이여, 나와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말씀하셨다. 그날에, 그는 축복된 자와 저주받은 자를 심판할 것이다. 그는 축복받은 자들에게 어떤 요구사항이 있는지 설명하신다.

스퍼건은 구약의 마지막 말씀이 '저주'이며, 예수 사역의 첫 설교가 '축복'으로 시작됨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팔복(八福)의 축복의 말씀은 모두 현재 시제로 되어 있음 또한 언급합니다. 즉, '복이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복이 있다'입니다. 미래의 약속이 아닌, 바로 지금 현재 기뻐해야 할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 마지막 책 말라기 4장을 찾아보니 "정하신 날 (심판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주로 그 땅을 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 4:6).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오늘 행복하면 심판의 날 우리는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잘 했다' 칭찬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

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개인번역) 3.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첫 번째 축복의 대상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팔복(八福)의 개념은 쉽기도 하고 너무 어렵기도 합니다. 심령(spirit)이 가난한 것은 무엇일까? 영적인 자산이 없음을 인식하는 것; 영적으로 파산했음을 아는 것; 하나님에게 스스로 죄인이며, 반항적이며, 도덕적이지 않음을 고백하는 영혼을 가지는 것... 이것이 팔복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팔복을 받을 기본이 되어 있을까요?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

2. (4) The godly reaction to poverty of spirit: mourning.

4.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개인번역) 4.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대 그리스어로 'mourn(슬퍼하다)'는 죽은 사람에 대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극도의 슬픔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깊은 경건한 슬픔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악의 상태에 대해 진정으로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

5.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개인번역) 5.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온유하다'는 말을 무엇일까요? 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 이 고대 그리스어 praus(온유한)를 영어 단어 하나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분노와 무관심 사이의 적절한 균형, 적절하게 통제된 강력한 성품, 그리고 겸손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분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분노를 억제하고 화를 내지 않는 자.

  • 온유하다는 것은 적절한 권한 아래에서 복종하고 일할 의지를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고려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준다. 
    •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
    • 그들은 내적으로 강인하면서 - 겸손하고, 부드럽고, 인내심이 있고, 오래 참는다는 점에서 사람들 앞에서 온유하다.
  • "그들은 세상 밖으로 밀려날 것 같지만,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이다.' 늑대는 양을 잡아먹지만, 세상에는 늑대보다 양이 더 많고, 양은 계속 번식하여 푸른 초장에서 먹이를 먹는다." (Spurgeon)

설명을 정리하니 '온유하다'는 말은 어려운 의미입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온유하면 세상 밖으로 밀려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에게 땅을 상속하십니다. 학자의 설명 대로, 세상에서 사나운 늑대는 온순한 양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유한 양을 번식하게 하셔서 양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그들은 푸른 초장에서 먹이를 보장받습니다. 


마태복음 5:6. 의로운 자

6.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개인번역)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는 권력, 권위, 성공, 안락, 행복 등 많은 것에 배고프고(굶주리고) 목말라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어가 '의로움'이라면 어떨까요? 예수님은 영적으로 배고프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학자는 설명합니다:

  • 이것은 간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깊은 배고픔을 묘사한다. 이것은 영원의 이쪽에서 결코 완전히 충족되지 않고 지속되는 그리움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의로움이 이루어지는데 배고프고 갈증을 느낀다면, 실제로 육체적으로도 그들은 굶주리고 목마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5:7. 자비로운 자

7.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개인번역) 7.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자비를 받을 것이다.

'자비롭다(긍휼히 여긴다)'는 말을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라고 말합니다. 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영혼의 빈곤에 빠지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다. 당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애통하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다. 온유함의 은혜를 받고 온유해지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다. 의에 굶주리고 목마르게 되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자비를 베풀 것으로 예상되는 이 사람은 이미 자비를 받은 사람들이다.

자비로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 것을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자비(긍휼)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다윗 왕에게 놀라운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특별히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돌고 도는 것이 자비인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깨끗한 자

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개인번역)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순수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언어나 행동에서 순수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도덕적 순수함을 말합니다. 순수한 사람들이 받는 가장 큰 보상은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탐욕, 억압, 욕정, 속임수로 오염된 죄의 상태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이러한 오염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자연 속에서, 성경에서, 교회의 공동체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9. 평화를 이루는 자

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개인번역)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번 축복의 대상은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능동의 명사입니다.  실제로 평화를 가져오고, 악을 선으로 극복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학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해의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이루는 한 가지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고후 5:18). 복음전파로 우리는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만든다.

그들의 평화와 화해에 대한 열정으로 사람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10.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11. “Blessed are you when they revile and persecute you, and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falsely for My sake.
12.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so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ho were before you.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개인번역)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에게 온갖 악한 말을 할 때, 너희에게 복이 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다."

의로움을 위하여(10절), 그리고 예수를 위하여(11절)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박해는 물리적인 학대나 고문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한 보상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상이 없으니 마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외칩니다. 


번역하면서 정리하다 보니, 팔복의 개념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이 팔복 중에서 우리는 몇 부류의 카테고리에 속할까요?  

팔복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도 상을 받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마음이 깨끗한 자', 또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상을 주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노벨평화상은 있지만, '평화를 이루는 자'라는 세상의 상은 없습니다. 그러나 팔복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곤 합니다. 그 이유는 팔복에 설명된 가치와 성격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matthew-5/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