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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마태복음(Matthew)9:1-13(가서 배우라!)

by 미류맘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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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치유하십니다. 이를 본 율법학자들의 악한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죄와 질병 모두에 대한 자신의 권세를 주장하십니다. 한편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9:1-2. 예수께 데려온 중풍병자

1. So He got into a boat, crossed over, and came to His own city.
2. Then behold, they brought to Him a paralytic lying on a be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be of good cheer; your sins are forgiven you.”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개인번역)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호수를 건너 자기 마을에 이르셨다. 2. 그때에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중풍환자를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기운을 내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여기에서 '자기 마을'은 가버나움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의 다른 기록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과 누가복음 5장은 이 중풍환자가 어떻게 예수께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많은 무리들 때문에 환자의 친구들은 지붕을 통해 그를 예수께 내려줍니다. 학자는 메시아의 치료자로서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를 인용합니다:

아들아, 기운을 내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마 9:2, 이미지 소스: https://www.holytrinityutrecht.nl/)

  • "그 때에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저는 사람이 사슴같이 뛰고, 말을 못 하는 사람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사 35:5-6)

듣고 상상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가 기다렸던 메시아였다는 사실이 증명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당시 로마의 압제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로마군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는 힘을 과시하는 메시아였습니다.

선지자의 예언처럼 그들의 눈이 떠지고, 귀와 입이 열리고, 병에 걸린 사람이 뛰어도, 그들은 주님을 향해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들의 많고 심각한 질병은 그들이 언약을 어기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주 너의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그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며, 그의 계명과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보냈던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다." (출 15:26)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 결과 각종 질병이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그들을 치료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2a절):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닌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든 사람을 치유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기운을 내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2b절) 그 중풍환자에게 죄가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죄를 먼저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왜 예수님은 그의 죄를 먼저 용서하셨을까요? 학자는 설명합니다:

학자는 예수님이 그 사람의 죄를 먼저 처리하신 여섯 가지 이유를 아래와 같이 보았다:

  • 죄는 우리의 모든 악이 나오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 신체적 치유보다 죄의 용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예수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일이 죄를 다루는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사람의 죄가 용서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 믿음에 대한 반응이 죄의 용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과 중요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 Matthew Poole

환자를 데리고 온 믿음의 사람들은 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자의 설명을 읽고 뒤에 율법학자들의 반응을 보면, 예수님은 환자를 치유하면서 그들을 일부러 자극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태복음 9:3.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3. And at once some of the scribes said within themselves, “This Man blasphemes!”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개인번역) 3. 몇몇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한다!"

무리 중에 있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도 아닌데 '죄를 용서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성모독이다". 영어 버전에서 표기된 'This Man'에 대해 학자는 논평합니다: 

  • "그들은 그를 '사람(man)'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단어는 우리 버전에서 이탤릭체로 되어 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조차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이 사람(this Man)'을 의미했다. 이 건방진 친구, 이 아무게, 이 이상한 존재." (Spurgeon)

마태는 위의 믿음이 있어 보이지 않는 중풍병자의 치유(죄 사함)와 율법학자의 생각을 조화롭게 연결시킵니다. 복음서에서 3절은 예수님에 대한 반대에 대한  첫 언급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젊은 신출내기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서 '너희 죄가 용서받았다!' 선포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친구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건 신성모독인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의중을 예수님은 읽으십니다.


마태복음 9:4-5.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4. But Jesus, knowing their thoughts, said, “Why do you think evil in your hearts? For which is easier, to say, ‘Your sins are forgiven you,’ or to say, ‘Arise and walk’?”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개인번역) 4.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쉽겠느냐?"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쉽겠느냐?" 이 질문에 대해 학자는 설명합니다. 

  • 인간에게는 치유와 용서 둘 다 불가능하다. 그러나 치유의 약속만이 즉시 증명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죄가 용서되는 것을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이 치유되는 것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그가 너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너의 모든 병을 고치신다" (시 103:3). 여기에서 용서치유이다. (Clarke)

즉,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말씀하실 때 육체의 병에서 치유함을 말씀하신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의 용서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몸의 치유는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 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9:6-8. 죄와 질병 모두에 대한 권세를 주장하시는 예수님!

6.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power on earth to forgive sins”; then He said to the paralytic, “Arise, take up your bed, and go to your house.”
7. And he arose and departed to his house.
8. Now when the multitudes saw it, they marveled and glorified God, who had given such power to men.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개인번역) 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 수 있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환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네 침상을 가지고 너의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서 자기 집으로 갔다. 8. 무리가 이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 수 있게 하겠다 (6절):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대화를 여신 이유는 이것을 밝히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물으시고(5절) 대답하십니다(6절). 예수는 건강의 치유뿐 아니라 죄의 용서할 권세도 가지고 계시다는 증거를 제공하십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명령하십니다: "일어나서, 네 침상을 가지고 너의 집으로 가라" (6절). 

그가 일어나서 자기 집으로 갔다 (7절): 이로써 예수님은 치유와 용서 모두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십니다. 앞에서는 '죄를 용서받았다' 말씀하셨고, '(네 병이 나았으니) 네 침상을 들고 너의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고, 그 둘 다 이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육적인 눈으로 그 사건을 보고 사람들은 반응합니다. 

 무리가 이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8절)

마태복음 9:9.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다

9. As Jesus passed on from there,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tax office. And He said to him, “Follow Me.” So he arose and followed Him.

마태를 부르시다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개인번역)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서 지나가실 때,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 하니, 그가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라는 사람 (9a절): 마태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세리 마태(본명은 레위)를 말합니다. 당시 세리는 유대인과 대항하여 로마인과 협력하는 사람들로 악명 놓은 죄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오늘날로 말하면 세무서에 앉아 있는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저자인 마태가 자신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것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당시 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 하니 (9b절): 그런 마태를 예수님은 부르십니다. 마태는 세리 직업을 그만두고 예수를 따랐고, 결국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9:10-13.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예수님

10. Now it happened, as Jesus sat at the table in the house, that behold, many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and sat down with Him and His disciples.
11. And when the Pharisees saw it, they said to Hi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12. When Jesus heard that, He said to them, “Those who are well have no need of a physician, but those who are sick.
13. But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mercy and not sacrifice.’ For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개인번역) 10. 예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으시니,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11.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의 선생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 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나는 희생제물보다 자비를 원한다'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삼으신 후의 일이기 때문에, 마태의 전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추정됩니다.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았습니다. 마태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선생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 (11절):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12절): 예수께 질문을 한 바리새인들은 병든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의사, 즉 병든 사람들이 건강해지기를 바라지만 스스로 감염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의사들과도 같습니다. 스스로 의사임을 인정하고 자부하면서 병든 사람이 스스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위선적인 의사들입니다.

예수님은 필요한 병든 사람(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이거나)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아픈 곳을 치유해 주시는 진정한 의사입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나는 희생제물보다 자비를 원한다 (13절): 여기에서 예수님은 호세아서를 인용하셨다(호 6:6). 호세아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전히 제물을 잘 가져왔지만(호 5:6), 그들은 자비(사랑)를 버렸다(호 4:1). 

"나는 자비를 원하며 제사를 원하지 않고, 번제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한다" (호 6:6)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자비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호 4:1)

예수님은 선지자 호세아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비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버렸음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자비를 베풀 줄도 모르면서 희생제물만 겉치레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행동하는 믿음을 보이시면서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나는 희생제물보다 자비를 원한다'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 9:13, 이미지 소스: https://dailyverses.net/)

가서 배우라!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불쾌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인가?" 마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예수님을 보고 놀랐던 제자들처럼 말이지요.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matthew-9/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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