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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이스라엘(Day6)

34. 헤롯대왕의 수로 가이사랴 항구로 들어가면서(1부)

by 미류맘 2017.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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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대왕이 인조 항구를 축조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헌상한 지중해 연안 도시, 가이사랴"


2017년 2월 14일(화) 6: 헤롯대왕의 수로 가이사랴 항구로 들어가면서



카르멜 산을 떠나 가이샤라 국립공원으로 이동합니다. 가이사랴 브로셔에서 인용합니다.


가이사랴 국립공원은 샤롬 평야의 북부지역에 있는 타닌 강과 하데라 강 사이에 있는 지중해 인근에 있다.이 해변은 쿠르카르(Kurkar) 능선 끝자락이 파도로 의한 침식과 퇴적 작용으로 인해 낮은 만이 형성되어 있다. 예로 이러한 만은 배들의 정박지로 늘 이용되었다.

(출처1: 가이사랴 한글 브로셔, 저자: Y. Porath)



가는 길에 사진이 끊긴 것을 보니 차에서 잠이 들은 모양입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것이 이스라엘을 들어가면서 잘 자기 시작합니다.

하이파와 텔아비브 사이에 위치한 가이사랴 국립공원은 북쪽으로 하이파(Haifa)까기 42.6km,

그리고 남쪽 텔아비브까지는 55.6km 거리에 위치합니다.



가는 길 언덕 위에 아파트 공사로 보이는 장소가 보입니다.



하늘이 짙푸릅니다.



므깃도와 카르멜산처럼 비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초록은 여전합니다. 



약 40분 걸려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아래는 가이사랴에서 받은 한국어 브로셔입니다.



가이사랴 국립공원은 남쪽의 로마식 극장(1)부터 북쪽으로는 십자군 성채에 이르는 아주 넓은 곳입니다. 비잔틴 광장, 헤롯시대의 전차 경주장, 프로몬토리(promontory: 해변곶) 궁전, 목욕탕(5) 및 잘 조직된 거리들(4) 등다양한 유적들이 있습니다.

(출처2: 가이사랴 브로셔)



가이사랴 입구인데, 입구는 3개입니다.

(1) 로마식 극장 앞, (2) 십자군 성채의 남쪽 성벽 부분, (3) 십자군 성태의 동쪽 성문 부분. 우리가 들어간 입구는 (1)은 아니고 2 아니면 3.



가이사랴(Caesarea)는 건축의 황제로 알려진 카르멜헤롯 대왕이 인조 항구를 축조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헌상한 지중해 연안 도시 (출처: 라이프성경사전)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 10:1)



베드로는 이곳에서 로마 백부장을 회심시켰다 (출처: 라이프 성경사전).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 10:24)

 


또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이곳에서 공관을 마련하고 나라를 다스리다 죽음을 맞았으며, (출처: 라이프 성경사전)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행 12:19-23)

 


카이사레아는 지중해변과 갈릴리호 북쪽, 그리고 카파도키아 지방의 카에사리아 세 곳이 있다. 모두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케사르를 기리는 뜻에서 명명된 도시이다(출처: 라이프성경사전)



여기가 Crusader Gate가 아닌지...



이 문으로 들어가면 높은 성벽이 나오고 웅장한 내실이 우리를 반긴다.



이 곳이 십자군 전쟁문(Crusader Gate)가 맞는 것 같습니다.



가이사랴(또는 카이사레아, 가이사랴 빌립비, Caesarea Philippi)라고 불리는 도시는 마태와 마가에 언급된다. 현재 이 도시에는 거의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구약에 언급되지 않는 바니아스(Banias)라고 불리는 골란 고원(Golan Height)에 있는 고고학 장소이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



이 장소를 나오면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 곳이 십자군 전쟁문(Crusader Gate)가 맞는 것 같습니다.



어디로 들어갔는지 몰라 폐허 뿐인 곳이 어디였는지 모르겠습다. 



촬영에 열심인 언니 ㅋ

 


대형 안내문이 기이시랴 '발굴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기이시랴 개발공사(Caesarea Development Corporation)가 이스라엘 자연공원국(Israel Nature and Park Authority)

이스라엘 유물국(Israel Antiquity Authority)와 협력하고 하는 프로젝트.


십자군 요새와 십자군 입구문 근처에 있는 도시의 동쪽에 있는 곳에서 실제로 발굴 공사는

헤롯대왕(10~22 BCE)부터 King Louis the Saint of France(13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이 장소가 Nymphaeum - Roman Fountain(로마 시대의 분수)라고 합니다.



가이사랴 항구에 대해 사도행전에서 여러번 언급이 되고 있다. 


헤롯 대왕이 인조 항구를 축조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헌상한 지중해 연안 도시( 10:1).

예루살렘 북서쪽 105㎞ 지점에 위치하였다. 당시 로마 총독부가 위치한 팔레스타인 제일의 거대 도시로 주민 대다수는 헬라인이었다.

신약성경에서 가이사랴는 집사 빌립이 전도한 성읍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 8:40).

베드로는 이곳에서 로마 백부장을 회심시켰다( 10:1, 24; 11:11).

또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이곳에서 공관을 마련하고 나라를 다스리다 죽음을 맞았으며( 12:19-23),

회심한 바울이 고향 다소로 가는 도중에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9:30),

후에 2, 3차 선교여행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귀향할 때 이 항구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18:22; 21:8).

또한 3차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이곳에 감금되어 있다가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아그립바 2세 앞에서 변론하였고( 23:23; 25:12), 

로마로 압송될 때 이곳에서 출항하였다( 25:13-27:1).

(출처: 생명의 말씀사)


내용이 너무 길어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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