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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욥기(Job)9:17-35(중재자가 있었으면?)

by 미류맘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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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너무도 강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있을까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자신에게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만, '나도 나를 알 수 없다'라고 비관하면서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중재자의 도움을 절실히 원합니다.

 

욥기 9:17-20. 너무도 강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나의 의로움을 증명할 수 있을까? 

17-20. For He crushes me with a tempest,
And multiplies my wounds without cause.
He will not allow me to catch my breath,
But fills me with bitterness.
If it is a matter of strength, indeed He is strong;
And if of justice, who will appoint my day in court?
Though I were righteous, my own mouth would condemn me;
Though I were blameless, it would prove me perverse.”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개인번역) 17. 그는 폭풍으로 나를 짓눌러 부수시고, 이유 없이 내 상처를 크게 하신다. 18. 나에게 숨도 쉬지 못하게 하시고 괴로움으로 내를 채우신다. 19. 힘으로 말하자면, 그는 정말로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그 누구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내가 의롭다 하더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다. 내가 흠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잘못되었다고 증명할 것이다."

 

는 폭풍으로 나를 짓눌러 부수시고 (17절): 욥은 계속해서 너무나도 크신 하나님이 부담되고 원망스럽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롭다 하더라... 흠이 없다 하더라도 (20절): 이 구절은 조건절로 욥은 자신이 죄가 없음을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롭고 흠이 없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면, 그는 자신의 오만으로 스스로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학자는 다른 성경과 비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롬 8:33-34)

 

그래서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아무것도 없다고 시인합니다. 그리고,


욥기 9:21-24. 나도 나를 알지 못한다!

21-24. “I am blameless, yet I do not know myself;
I despise my life.
It is all one thing;
Therefore I say, ‘He destroys the blameless and the wicked.’
If the scourge slays suddenly,
He laughs at the plight of the innocent.
The earth is given into the hand of the wicked.
He covers the faces of its judges.
If it is not He, who else could it be?”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개인번역) 21. "나는 흠이 없지만 나도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그저 내 삶을 경멸할 뿐이다. 22. 모든 것이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은 흠 없는 자나 악한 자다 멸망시키신다'라고 말할 수밖에? 23. 만일 재앙으로 갑자기 죽임을 당한다면, 그분은 무고한 자의 재앙을 보고 비웃으신다.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고, 주님께서 재판관의 얼굴을 가리신다. 그렇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대체 그 누구란 말이냐?" 

 

나는 흠이 없지만 나도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21절): 그는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도 자신을 알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그는 자문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완전히 흠이 없는 사람인가?" 그리고는 자신을 경멸합니다.  

 

하나님은 흠 없는 자나 악한 자다 멸망시키신다 (22절): 스스로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멀고 강하신 "하나님은 모든 자를 멸하시는 분'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무고한 자의 재앙을 보고...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고 (23-24절): 욥이 보기에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도,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도 묵인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조리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보고, 그렇게 하실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고 좌절합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대체 그 누구란 말이냐? (24b절)

욥기 9:25-31. 내 옷도 나를 싫어하리리라!

25-31. “Now my days are swifter than a runner;
They flee away, they see no good.
They pass by like swift ships,
Like an eagle swooping on its prey.
If I say, ‘I will forget my complaint,
I will put off my sad face and wear a smile,’
I am afraid of all my sufferings;
I know that You will not hold me innocent.
If I am condemned,
Why then do I labor in vain?
If I wash myself with snow water,
And cleanse my hands with soap,
Yet You will plunge me into the pit,
And my own clothes will abhor me.”


25.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26.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28.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개인번역) 25. "나의 날들이 달리기 선수보다 더 빨라서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다. 26. 나 날들이 빠른 배와 같이 지나가고,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 만일 내가 '내 불평을 잊고, 내 슬픈 얼굴을 벋고, 미소를 입자'라고 말하더라도, 28. 내 모든 고통이 두렵구나. 당신은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을 것을 압니다. 29. 만일 내가 정죄를 당한다면, 어찌하여 내가 헛되이 수고해야 할까? 30. 만일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아도, 31. 당신은 나를 구덩이로 빠지게 하실 것이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나의 날들이 달리기 선수보다 더 빨라서 (25절): 그리고 욥은 자신의 삶(날들)을 돌아봅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삶이 공포스럽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경주자, 빠른 배,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와도 같은 그의 삶은 그를 향한 포식자와도 같습니다. 욥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자신의 삶이 두려운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은 느긋한 것만 같습니다. 욥은 너무도 정직합니다. 

 

내 불평... 슬픈 얼굴... 미소 (27절): "나의 고난과 슬픈 얼굴빛을 버리고, 즐거운 것처럼 하자!"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워도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을 것을 압니다 (28절): 다른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자신은 죄가 없으나,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는 사람이 없음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정죄를 받을 것을 예상합니다. 앞에서 무고한 사람도 "짓눌러 부수시고, 이유 없이 그 상처를 크게 하시는" (17절)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생각으로 죄가 없다 해도, 주님 앞에서 무고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30절): '눈 녹은 물'은 구하기 어렵고, 깨끗하고, 영적으로('눈'이 하늘에서 내리기 때문에) 여겨져서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헛됨을 말한다고 합니다 (참조: Spurgeon). 욥은 자신의 죄를 씻어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한탄합니다.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30절): 우리는 가끔 어떤 옷이 너무 더러워서 그 옷을 입기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옷이 나를 거부하는 것은 내가 옷보다 더 더럽기 때문입니다. 욥은 말합니다: "내 옷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너무 더러운) 대신 다른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욥기 9:32-35. 중재자의 도움을 원하는 욥

“For He is not a man, as I am,
That I may answer Him,
And that we should go to court together.
Nor is there any mediator between us,
Who may lay his hand on us both.
Let Him take His rod away from me,
And do not let dread of Him terrify me.
Then I would speak and not fear Him,
But it is not so with me.”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개인번역)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시니,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법정으로 들어갈 수도 없구나. 33. 우리 둘 위에 선을 얹고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할 자가 없구나.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거두시고, 그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지 않기를 원한다. 35. 그렇다면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구나."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시니 (32절): 하나님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한 욥은 자신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어서 하나님을 고소해서 같이 법정으로 가서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중간에 해결해 줄 중재자도 없습니다. 그러한 중재자에 대한 약속은 예수님이 오시면서 이루어졌습니다. 고대에 살았던 그가 오직 원하는 것은,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거두시고 (34절): 심판대 위에 앉으셔서 심판의 막대기를 들고 계신 주님께서 자신을 향한 막대기를 거두시길 원할 뿐입니다. 그에게는 중재자도 없고 주님 앞에서 말할 자신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결이 되지 않는 한탄만 계속합니다. 

 

아래는 이미지를 검색하다가 찾은 것입니다. 욥이 중재자를 찾으면서 한탄합니다 (욥 9:33-34)

  • 누군가가 우리 사이를 중재해 주었으면!
  • 우리를 함께 한 장소에 소환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 하나님의 막대기를 나에게서 거두게 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욥이 찾은 그 '누군가'의 존재는 바로 영원한 우리의 중재자이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존재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 없이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도,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소스: https://triciagoyer.com/

 

오늘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 명예, 지나간 과거, 형태 없는 미래? 모든 것이 순간적인 것입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가의 결과이고...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현재'가 아닐까요? 현재에 충실하게 살면서 예수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며칠 전만 해도 낙엽에 푸른 잎들이 많았는데 이틀 전에 갔는데 나무의 모습이 겨울입니다(왼쪽 사진은 이틀 전에 찍은 것입니다). 파란 하늘에 까마귀들이 가득한데 할 말이 있는지 서로 뭐라고 주고 받습니다. 한참을 멍하고 그 녀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공중의 까마귀도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우리는 걱정합니다. 마음이 뒤숭숭할 때, 자문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는 하실까?" 또는 욥처럼 "그분은 너무 크고 나와는 너무 멀어서, 나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으실 거야..." 자포자기도 합니다. 그러나 산책할 때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보고, 하늘을 나는 새들, 찬 공기, 하늘, 구름, 석양... - 이런 것들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느낍니다.  

 

어제 교회를 빨리 다녀오고 그릇들을 만들었습니다. 물레를 돌릴까, 판작업을 할까? 생각하다가 산책하다가 주어온 화분에 꽂아놓은 잎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종일 흙을 빗어서 자연을 담은 그릇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릇들을 만들면서 '비움'이란 도장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비움' 그릇을 무엇으로 채울까?" 늘 생각합니다. 도장을 '채움'으로 바꾸어야 할까?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b-9/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 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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