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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욥기(Job)3:1-26(왜 계속 살아야 하나?)

by 미류맘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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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입을 열어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나, 하나님은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자문합니다.

 

욥기 3:1-10.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욥

1-10. After this Job opened his mouth and cursed the day of his birth. And Job spoke, and said:

 

“May the day perish on which I was born,
And the night in which it was said,
‘A male child is conceived.’
May that day be darkness;
May God above not seek it,
Nor the light shine upon it.
May darkness and the shadow of death claim it;
May a cloud settle on it;
May the blackness of the day terrify it.
As for that night, may darkness seize it;
May it not rejoice among the days of the year,
May it not come into the number of the months.
Oh, may that night be barren!
May no joyful shout come into it!
May those curse it who curse the day,
Those who are ready to arouse Leviathan.
May the stars of its morning be dark;
May it look for light, but have none,
And not see the dawning of the day;
Because it did not shut up the doors of my mother’s womb,
Nor hide sorrow from my eyes.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다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개인번역) 1. 그후 욥이 입을 열고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2. 이렇게 말했다 3. "내가 태어난 날이 사라져 버렸다면, '남자아이를 배었다'라고 말하던 그 밤도 없었다면! 4. 그날이 어둠이 되었다면,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 그날을 찾지 않으시고, 빛도 그날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사망의 그림자가 그날을 삼키고 구름이 그 위에 내려앉아, 그날의 흑암이 그날을 덮쳤다라면, 6. 그밤이 흑암에 사로잡혔더라면, 한 해의 날 중에서 그 밤이 기뻐하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이 잉태하지 못하는 밤이었다면! 어떠한 기쁨의 함성도 없는 밤이었다면! 8. 리워야단을 깨울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그날을 저주했더라면, 9. 그 밤의 새벽 별들이 어두워져서, 빛을 기다리지만 빛이 없는 날이었으면, 동트는 것도 보지 않았을 터인데! 10. 어머니의 자궁문을 닫지 않아, 내 눈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구나.

 

그후 (1절): 앞에서 욥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 후의 일일까요? 그는 자신의 처지와 상태를 돌아본 것 같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서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 사탄은 욥이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저주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욥 1:11, 2:5). 그러나 그의 화살은 자신에게 향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 욥이 자신의 상황(육체적, 영적 전쟁)을 시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그후 욥이 입을 열고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이렇게 말했다 (욥 3:1-2, 이미지 소스: https://www.hearthymn.com/)

 

내가 태어난 날... 그날이 어둠이 되었다면 (3-4절): 욥은 자기가 태어난 날을 경멸하면서 달력에서 그날이 지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은 언급하지만, 사탄이 바라던 대로 하나님을 저주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 지금의 고통을 겪느니 오히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리워야단을 깨울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8절): '리워야단'에 대한 이 언급은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언급이라고 합니다. 고대에서 선원들과 어부들을 공포에 떨게 한 신화 속의 바다괴물이나 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 그 괴물을 깨울 마법사들이 저주를 하였다면 그는 소망합니다. 

 

어머니의 자궁문을 닫지 않아 (10절): 그의 자기 탄생의 날에 대한 저주는 어머니의 자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떻게 자신의 처참한 상황을 이렇게 시적으로 자신의 모든 살아 숨 쉬는 세포가 아플 정도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요?


욥기 3:11-19. 왜 나는 사산아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Why did I not die at birth?
Why did I not perish when I came from the womb?
Why did the knees receive me?
Or why the breasts, that I should nurse?
For now I would have lain still and been quiet,
I would have been asleep;
Then I would have been at rest
With kings and counselors of the earth,
Who built ruins for themselves,
Or with princes who had gold,
Who filled their houses with silver;
Or why was I not hidden like a stillborn child,
Like infants who never saw light?
There the wicked cease from troubling,
And there the weary are at rest.
There the prisoners rest together;
They do not hear the voice of the oppressor.
The small and great are there,
And the servant is free from his master.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개인번역) 11. "어찌하여 내가 태어나면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자궁에서 나왔을 때 멸하지 않았던가? 12. 어찌하여 나를 무릎으로 받았으며, 어찌하여 어머니의 가슴이 나에게 젖을 물렸던가? 13.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내가 편히 누워 있을 터인데. 지금쯤은 잠들어 있을 터인데. 14. 자신을 위하여 폐허를 세운 세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15. 금을 가지고 은으로 자신의 집을 채운 통치자들과 함께 쉬고 있을 터인데. 16. 어찌하여 나는 죽어서 태어난 아이처럼, 빛을 전혀 보지 못한 아기처럼 숨겨져 있지 못했는가? 17. 그곳은 악한 자의 고난이 그치고, 피곤한 자들이 휴식을 얻는 곳인데. 18. 그곳은 갇힌 자들이 함께 쉬며, 압제자의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인데. 19. 그곳은 작은 자와 큰 자가 다 같으며, 종이 자기 주인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인데!

 

어찌하여 내가 태어나면서 죽지 않았던가? (11절): 욥은 자신의 고통과 재앙을 놀라운 감정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호소하다가, 그것이 불가능하였다면 오히려 사산아로 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지금쯤은 잠들어 있을 터인데 (13절): 편히 누워 잠들어 있을 것을 욥은 간절히 원합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욥의 이해는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학자는 말합니다:

  • 욥은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었다. 아마도 죽은 자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때까지 정지된 상태에서 무덤에 누워 있다는 현대의 영혼 수면에 대한 교리와 비슷한 것을 믿었을 것이다.

어제 사후세계에 대한 설명에서 이해가 어려워 QT를 정지하고 오늘 다시 시작했습니다. 구약에 살았던 욥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실제로 그가 말했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후의 (After Christ)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고후 5:6-8)

 

바울이 말하는 사후세계는 무덤에 누워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육체의 옷을 벗고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구약시대 불멸에 대한 이해는 모호했으나 신약에서는 훨씬 더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를 신약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은 욥의 이러한 주장을 바로잡아 주십니다(욥 38:2, 17).

 

그곳은 악한 자가 근심을 그치고 (17절): 한글성경은 "악인이 날뛰지 못하고(소란을 피우지 못하고)"로 번역합니다. 영문성경은 'the wicked cease from troubling'입니다. 생각에 따라 '악인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또는 '악인이 근심을 그치고'인데... 마찬가지일 수 있는데, 전 후자로 번역합니다. 학자는 욥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여 설명합니다:

  • 사실, 악인들은 저 세상에서 근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근심은 늘기만 한다. 갇힌 자(죄수)들에게는 쉼이 없고, 아마 그들이 듣는 유일한 목소리는 압제자의 고함소리일 것이다." (Andersen)

그렇다면, 욥의 사후세계에 대한 이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그곳에서 악한 자의 고난은 늘기만 하고(또는 그들의 소란은 멈추지 않고), 악인과 죄인들에게는 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욥의 생각에 사후세계는 악인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욥이 토로하는 것은 끔찍한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벋어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욥기 3:20-26.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

“Why is light given to him who is in misery,
And life to the bitter of soul,
Who long for death, but it does not come,
And search for it more than hidden treasures;
Who rejoice exceedingly,
And are glad when they can find the grave?
Why is light given to a man whose way is hidden,
And whom God has hedged in?
For my sighing comes before I eat,
And my groanings pour out like water.
For the thing I greatly feared has come upon me,
And what I dreaded has happened to me.
I am not at ease, nor am I quiet;
I have no rest, for trouble comes.”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개인번역) 20. "어찌하여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빛이 주어졌으며, 영혼이 괴로운 자에게 생명이 주어졌는가? 21. 이런 자는 죽기를 기다려도 죽음이 오지 않는다. 그들은 숨겨진 보물을 찾기보다 죽기를 바라다가, 22. 무덤이라도 찾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23. 어찌하여 하나님이 울타리를 치셔서 길이 막힌 자에게 빛을 주시는가? 24.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나오는 것이 탄식이요, 신음소리는 물처럼 쏟아지는구나. 25. 내가 몹시 두려워했던 일이 나에게 임하고,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일이 나에게 닥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안도, 안정도, 안식도 없이 고통만이 오는구나!"

 

어찌하여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빛이 주어졌으며 (20절): 하나님을 향한 욥의 질문을 계속됩니다. 자신과 같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왜 계속 살게 하시는지 묻습니다. 그렇게 사느니 오히려 죽음을 갈망하는 그의 고뇌는 정직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울타리를 치셔서 길이 막힌 자에게 빛을 주시는가? (23절): 그는 반문합니다. "내가 길을 볼 수 없고 하나님께서 이곳에 나를 가두셨는데, 어찌하여 계속 살아야 하는가(빛을 주시는가)?" 고통 속에서 그가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벌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일까요? 그가 가진 모든 것(아이들, 종들, 가축들, 집...)을 하나님께서 가져가신 것에 대해 그는 통곡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을 슬퍼할까요?

  • "그는 결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과 그의 종들과 낙타들과 그의 집을 빼앗아 가신 것에 대해 징징대고 통곡하지 않는다... 그러나, 욥이 원망하는 것은 그가 영적 상태를 잃은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은 것 – 그의 창조주와의 끊어질 수 없는 친교를 잃은 것, 주님의 친교과 인정에 대한 어떤 느낌의 상실." (Mason)

  • 사탄이 욥의 삶을 침입하여 큰 손실을 입혔고, 하나님께서 욥의 삶에 또 다른 울타리를 치셨다... 그는 지금 갇혀 있다. 이제는 사탄이 들어오기를 막기 위한 보호의 벽 대신에, 욥을 안에 가두는 고난의 벽이 있다." (Lawson)

하나님에 욥에게 치신 울타리는 사탄에게는 그가 가진 것을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치신 울타리였습니다("주께서 욥과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 주위에 울타리를 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욥 1:10). 그러나 욥은 그 울타리를 제약의 울타리로 보고 있고 자신이 그 안에 갇혀있다고 생각합니다. 울타리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목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평안도, 안정도, 안식도 없이 고통만이 오는구나! (26절): 큰 믿음을 가진 욥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3장을 마칩니다. 욥은 글에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 절망적인 상황을 시적 언어로 분출해 내는 것에 놀라울 뿐입니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슬픔이 있을까요? 욥의 저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3:1-10)
  • 오히려 죽었으면! (3:11-26)
  • 사람들이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6:2,3)
  • 시간이 좀 천천히 흐르기를! (7:1-11)
  •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일을 하실까? (7:17-21)

나에게는 평안도, 안정도, 안식도 없이 고통만이 오는구나!" (욥 3:26, 이미지 소스: https://slideplayer.com/slide/13040408/)

어제 욥기를 묵상하다가 그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에서 혼동이 오고 머리도 아퍼 공부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이른 산책을 갔는데 날씨가 요란합니다 - 폭우가 내리다가, 하늘이 파래지다가, 강풍이 불다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다가...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 날아갈 것 같아서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고 내려왔습니다. 욥의 생각이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제 마음에도 큰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오늘 다시 3장을 읽다가 욥의 생각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맞는가? 자문을 하게 됩니다. 욥의 둘레에 치신 하나님의 울타리 - 어떤 의도로 치신 울타리일까요? 내 주위에도 그런 울타리가 있습니다. 나 스스로 친 것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울타리는 보는 방향에 따라 넘을 수도 있고 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한 의도로 친 울타리는 넘지 말아야 하고, 악한 의도로 친 울타리는 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신이 친 울타리도 목적에 맞지 않는다면 없애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친 울타리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필요한 울타리, 불필요한 울타리.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b-3/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 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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